1. 프롤로그: 우리는 어떤 공포를 소비하는가
요즘, 유튜브를 보든 SNS를 보든 말이야... 세상 돌아가는 거 보다 보면 그런 생각 들지 않아? 어디선가는 늘~ “위기다”를 만들고, 누군가는 그 위기를 “관리한다”는 얼굴로 서 있잖아. 그게 뉴스든, 회사 회의든, 커뮤니티든… 늘 어딘가엔 가상의 적이 존재하더라고... 아마 그래야 사람들이 뭉치고, 그래야 불안이 돈이 되고, 그래야 누군가의 말이 법이 되기 때문인 걸까?
이강백의 희곡 『파수꾼』은 바로 그 만들어진 공포의 작동 방식을 다루는 이야기야. 황야의 망루 위 파수꾼들은 매일 밤 북을 두드려 “무언가가 온다”를 외치거든. 마을은 떨고, 질서는 강화되고, 파수꾼의 존재는...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지.
근데 어느 날, 소년 파수꾼이 자기 눈으로 확인해버려. ‘그건 짐승이 아니라, 흘러가는 흰 구름일 뿐’이라는 걸 말이야.
오늘 내가 찍고 싶은 건 소년의 타협 그 자체는 아니야. 그보다 더 잔인한 순간이 있거든! 진실(흰 구름)과 거짓(이리 떼) 사이의 경계가 안개처럼 흐려지는 순간. 촌장이 망루 위로 올라오고, 소년이 북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아직 북을 치지도 않았는데 이미 마음속에서는 한 번 울린 것 같은… 그 공기의 무게 말이야.
[시놉시스 | 거짓말을 지키는 소년]
황야 한복판의 망루. 늙은 파수꾼과 소년 파수꾼은 '마을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밤마다 망을 보고, 북을 두드리며 사람들의 불안을 관리해. 마을은 그 북소리에 기대어 잠들고, 촌장은 그 질서가 유지되길 원하지.
하지만 소년은 어느 날 깨닫게 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저 바람에 밀려오는 흰 구름이, 밤의 형태를 빌려 ‘무언가’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걸 말이야. 소년은 진실을 알리려 하지만, 촌장은 폭력 대신 논리와 애정의 언어로 소년을 감싸. “모두를 위해서”, “질서를 위해서”, “사람들이 잠들기 위해서” 같은 말로...
이 작품은 결국 묻는 거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이,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을 묶어두는 족쇄가 되는 건 아닌지. 오늘의 씬은 그 족쇄가 ‘탁—’ 하고 잠기는 직전, 촌장이 망루에 올라온 밤이야.
[오늘의 포인트]
망루 위에는 안개가 깔려 있고, 아래 마을은 보이지 않아. 진짜와 가짜를 가를 시야가 지워진 상태지.
촌장은 칼을 들지 않고, '부드러운 말'로 소년의 양심을 눌러.
소년은 북을 치기 전부터 이미 흔들려. 그래서 북의 첫 타는 '경보'가 아니라 자기 안의 진실을 스스로 덮는 소리가 돼.

2. Scene Reading: 친절한 폭력의 얼굴
이 작품에서 제일 소름 돋는 건 ‘늙은 파수꾼’도 아니고 ‘북소리’도 아니야. 촌장이지. 촌장은 소년을 협박하지도, 소리치지도 않아. 오히려 인자해. 다정하고, 합리적이고, 심지어 소년의 순수함을 칭찬까지 하거든.
근데 알지? 그게 진짜 무서운 거잖아. 촌장은 소년에게 “진실을 말해도 된다/안 된다”를 명령하지 않아. 대신 이렇게 바꿔 말해버려. “진실을 말하면, 더 많은 사람이 불안해질 수도 있어.” “오늘 밤만 네가 조금 감당해 주면, 사람들은 잠들 수 있어.” 폭력은 없는데, 빠져나갈 구멍도 없어지는 구조.
소년이 흔들리는 지점도 그거야. 그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죄책감도 갖고 있거든. 촌장은 그 죄책감을 정확히 눌러. 그래서 소년의 선택은 갑자기 비겁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좁아지는 통로 끝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돼.
결국 소년이 북채를 들어 올리는 순간, 그건 '이리를 쫓는 경보'가 아니라… 자기 양심을 조용히 묻는 장례처럼 들려. 이게 『파수꾼』이 우화에서 끝나지 않고, 지금도 유효한 비극처럼 느껴지는 이유지.
3. Director’s Cut: 안갯속의 고립
이 씬은 '무슨 말을 했냐'보다 '어떤 공기였냐'가 먼저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 관객이 답답해지고, 눈을 찌푸리고, 숨이 얕아지게 만들고 싶어.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사람은 더 쉽게 ‘믿음’에 기대거든.
🎥 Camera Work: 내려다보다가, 결국 갇히게 만들기
• 오프닝(멀리서): 익스트림 롱숏. 안갯속에서 망루 윤곽만 떠 있어. 마을도, 길도, 경계도 안 보여. 망루가 마치 구름 위 섬처럼.
• 접근(안개가 렌즈를 핥는 느낌): 천천히 망루로 다가가되, 안개가 프레임 앞을 스치면서 화면이 잠깐씩 흐려져. 관객이 “내 눈이 문제인가?” 싶게. 시야가 불안해지는 순간이 중요해.
• 대화(위계는 ‘티 안 나게’): 촌장은 과한 권위 샷 말고, 아주 미세한 로우 앵글. ‘폭력 없는 위압’이 느껴지는 정도만. 소년은 아이 레벨보다 살짝 위에서 눌러 찍고.
• 핵심 장치(대상으로 결론 강요): 촌장의 얼굴 → 소년의 눈 → 양철북 표면으로 랙 포커스. 말이 아니라 ‘북’이 결론을 강요하는 느낌. 북이 차갑게 빛나면 더 좋아.
• 마지막(첫 타 직전): 소년 손(북채) 클로즈업.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잡고, 그 떨림이 멈추는 순간… 첫 타가 들어가.
💡 Lighting: 안개는 ‘벽’이고, 역광은 ‘도장’이다
• 안개를 살리는 방향: 앞에서 비추면 밋밋해져. 빛은 뒤에서. 백라이트로 안개가 화면 안에 ‘벽’처럼 서게 만들자.
• 촌장의 얼굴: 다정한 말과 달리, 얼굴은 끝까지 다 보여주지 않았으면 해. 반쪽만 보이는 얇은 키 라이트. 따뜻한 척하지만, 완전히 드러나진 않는 사람.
• 소년의 실루엣: 북을 치는 순간, 소년을 실루엣으로 보내버리자. 개인의 얼굴이 사라지고 ‘역할’만 남는 느낌. 그 그림자는 소년이기도 하고, 늙은 파수꾼이기도 하고… 결국 시스템이기도 해.
• 색온도: 전체는 차가운 안개빛. 그런데 북 주변에만 아주 얇은 따뜻한 등불을 둬. 그 따뜻함이 위로가 아니라, 거짓을 더 그럴듯하게 만드는 ‘연출 조명’처럼 보이게.
🔊 Sound: 양철북은 경보가 아니라, 마음을 긁는 소리
• 시작은 생활 소리: 바람, 난간 삐걱, 멀리서 들리는 아무 의미 없는 공허한 울림. 음악은 없어야 해.
• 촌장이 말할수록 숨이 커져: 촌장의 말은 부드러운데, 소년의 호흡이 얕아져. 관객이 그 숨을 듣게 만들자. ‘설득’이 아니라 ‘질식’처럼.
• 북 리듬이 서사를 만든다: 첫 두 번은 간격이 길게. 망설임. 그다음부터는 간격이 점점 짧아져. 체념. 결국 리듬이 소년의 결심이 아니라, 시스템의 자동 실행처럼 들리게.
• 방향감 지우기: 북소리에 리버브를 깊게 걸어서, 안갯속에서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모르게. ‘경보’가 아니라 ‘감옥’이 되는 순간이야.
• 엔딩: 화면은 서서히 암전. 하지만 북소리는 한 번 더 남아. 마지막 타가 소년의 마음속에서만 울린 것처럼.
[이번 장면의 핵심 쇼트 3]
- 안개 속 망루 익스트림 롱숏: 아래가 지워진 세계, 고립된 섬 같은 망루
- 랙 포커스(촌장 → 소년 눈 → 양철북): 말보다 대상이 결론을 강요하는 순간
- 실루엣 + 양철북 첫 타: 개인의 얼굴이 사라지고, 역할만 남는 순간

4. Editor’s Note: 나의 파수꾼은 누구인가
우리는 소년을 쉽게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도 사회생활하면서 ‘촌장 같은 사람’을 많이 봤거든. 소리 지르지 않아. 대신 웃으면서 말해. “너만 조금 참으면 다 편해져.” “지금은 굳이 흔들 필요 없어.” 그리고 그 말들이 이상하게 설득력 있어. 왜냐면… 나도 피곤하니까.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흰 구름을 보고도 ‘저건 이리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몰라. 근데 가끔은 멈춰서 묻고 싶어.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그 적은 진짜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내 불안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름뿐인 형체일까.
오늘도 어딘가에서 북소리가 들려. 그 소리가 나를 지키는 소리인지, 나를 묶어두는 소리인지… 결국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야. 안개를 걷고,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 혹시 오늘 내가 두드린 북은, 이리를 쫓는 북이 아니라… 내가 본 ‘흰 구름’을 가리기 위한 북은 아니었을까?
[Scene Keyword]
Watchtower, Thick Fog, Silhouette, Tin Drum, Manufactured Fear, Lost Innocence
작품 : 이강백, 파수꾼 (희곡)
※ 본 글은 장면 해석/비평 목적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며, 원문 인용은 최소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