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대화는 오가는데, 사람은 남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말이야, 말을 안 하고 살 순 없잖아? 예전에 영상편집을 프리랜서로 할 땐, 스터디카페에 앉아서 혼자 작업하느라 말을 할 일이 없었지만, 직장은 다르지.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항상 소통을 해야 업무가 돌아가는 거잖아. ‘네, 확인했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자료 공유드립니다’.... 그러다 문득, 오늘 내가 한 말 중에 진짜 내 마음이 묻어난 문장이 몇 개나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어? 매 순간 상대를 향해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를 피해 매뉴얼을 낭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는 바로 그런 의심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서, 웃기는 척 하면서도 속을 서늘하게 만드는 작품인 것 같아. 인물들은 계속 떠들거든? 하지만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 의미도 쌓이지 않고, 감정도 서로에게 닿지를 않지. 물론, 내가 찍고 싶은 건 그들의 수다는 아니고, 그 수다가 만들어내는 규격화된 풍경이야. 같은 가구, 같은 자세, 같은 표정...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일이 점점 쓸데없어지는 그런 순간 말이야.
그래서 이번 장면의 핵심은 ‘배치’야. 사람을 사람으로 찍지 않고,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찍어보는 거지. 그게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관객은 자기 일상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웃기긴 하는데, 왜 웃고 나면 찝찝하지?’ 그 찝찝함이 바로 이 작품의 진짜 온도인 거지.
[시놉시스 | 말은 많고, 의미는 없는 거실의 루프]
영국 중산층의 거실. 스미스 부부는 저녁 식사 뒤 안락의자에 앉아 잡담을 이어가. 그런데 문장들은 멀쩡한 척 하면서 서로를 비껴가고, 시간과 사실은 뒤엉켜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아.
곧 마틴 부부가 방문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마저 어딘가 고장 나 있어 보여. 대화는 격식을 흉내 내며 계속되지만, 그 격식은 내용이 아니라 껍데기만 남은 의식처럼 반복되지. 여기에 소방대장까지 끼어들어 ‘출동할 곳’을 묻고, 인물들은 더 분주해지지만... 결론이 없어.
마지막엔 마틴 부부가 스미스 부부가 하던 대사를 한 글자도 다르지 않게 반복하며, 같은 자리에 앉아. 누가 주인공인지보다 중요한 건 하나야. 사람이 대체되는 속도가 너무 자연스럽다는 것...?
[오늘의 포인트]
완벽한 대칭: 안정감이 아니라 강박을 만드는 구도
무감정 조명: 깊이를 없애 ‘비어 있음’을 보여주는 밝음
신호에 반응하는 인간: 벽시계 소리와 말의 자동반사
2. Scene Reading: 시계가 17번 울려도,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가장 섬뜩한 건, 누가 누구를 속이거나 공격해서가 아니야. 오히려 아무도 악의를 품지 않는데도 삶이 기괴해지는 방식이 더 무섭지. 대표적인 장치가 벽시계야. 시계는 7번 울리다가 3번 울리고, 갑자기 17번을 울려. 시간의 규칙이 깨졌는데도, 인물들은 그걸 ‘고장’이라고 부르지 않아. 그냥 받아들이지.
그 반응이 말해주는 건 하나가 아닐까? 그들의 삶은 자기가 선택해 움직이는 삶이 아니라, 외부 신호에 맞춰 반응하는 삶이라는 것. 소리, 예절, 문장, 순서... 그 모든 것에 길들여진 채로, ‘나’가 빠진 대화를 계속 생산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에 자리가 교체되거든? 스미스가 있던 자리에 마틴이 앉고, 같은 문장이 다시 시작돼. 여기서 관객은 웃음 너머에 있는 공포를 만나게 되는 거야. 나도 저렇게 쉽게 교체될 수 있다는 감각... 뭐 그런? 이름이 아니라 자리, 사람이 아니라 기능. 그게 너무 현실적이라서 더 서늘한 거야.

3. Director’s Cut: 쇼윈도의 밝음으로, 영혼의 빈자리를 드러낸다
그래서 이 장면은 ‘웃기게’ 찍지 않을 거야. 관객이 웃더라도, 화면은 끝까지 건조하게. 감정을 넣는 순간, 이 작품이 말하는 ‘비어 있음’이 감정으로 덮여버리니까. 대신 구도와 빛과 소리로, 사람이 사람답게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만드는 거야.
🎥 Camera Work: 데드팬 대칭, 사람을 가구처럼 배치한다
• 정면 고정: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아. 흔들림도, 호흡도 없어. 화면은 정면에서 딱! 멈춘 채, 거실 전체를 ‘전시’하듯 보여줄 거야.
• 완전 대칭: 프레임의 중앙선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거울처럼 맞춰버릴 거야. 사람이 아니라 배치가 주인공이 되게.
• 인물의 크기: 클로즈업은 최~대한 아껴. 표정으로도 설득하지 않을 거고, 똑같은 자세가 오래 유지되는 시간으로 불편함을 키울 거야.
• 자리 교체의 무표정: 스미스가 빠지고 마틴이 앉아도 카메라는 그대로. 관객이 ‘무엇이 바뀌었지?’를 스스로 찾게 만드는 거지. 그 ‘거의 안 바뀐’ 느낌이 핵심이니까.
💡 Lighting: 그림자를 없애 깊이를 없앤다
• Flat High-Key: 밝고 평평한 조명을 쓸 거야. 시트콤 세트처럼 환한데, 따뜻하지는 않게 말이야. ‘밝아서 더 낯선’ 느낌을 만드는 거지.
• No Shadows: 그림자는 최소화 할 거야. 보통 그림자는 인물의 깊이를 주는데, 여기서는 깊이를 없애서 속이 비어 보이게 해야 해.
• 색온도 선택: 차갑게도, 따뜻하게도 가지 말고 애매~한 백색? 딱 ‘사무실 형광등’과 ‘전시장 조명’ 사이의 톤쯤이 될 것 같아. 생활공간인데 생활이 없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될까?
• 쇼윈도 질감: 가구 표면, 찻잔 유광, 액자 유리 반사가 조금씩 번들거리게 표현할 거야. 이건 의도적으로 사람보다 물건이 더 살아 보이는 역전을 만드는 거지.
🔊 Sound: 메트로놈 같은 초침과, 고장 난 울림
• 대사의 방식: 감정을 싣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면 좋겠어. 서로를 향해 말하지만 실제로는 어디에도 닿지 않는 발성처럼...
• 초침의 지속: 배경에 얇게 초침 소리를 깔아. ‘똑, 딱’. 이 소리는 음악처럼 감정을 끌지 않고, 관객의 신경을 조금~씩 긁는 기능을 해야 해.
• 17번의 울림: 시계가 갑자기 과하게 울릴 때, 사운드는 크게 튀되 ‘웅장하게’는 만들지 않아. 불량품의 과민 반응처럼! 불쾌하게!
• 생활음의 비현실: 찻잔 내려놓는 소리, 의자 가죽 삐걱임 같은 생활음을 살짝 키울 거야. 대화가 텅 비어 있으니, 물건의 소리가 대사를 이기는 순간이 오면 좋겠어.
[이번 장면의 핵심 쇼트]
- 완전 대칭 정면 와이드: 사람을 ‘관계’가 아니라 ‘배치’로 보이게 만드는 프레임
- 자리 교체 무빙 없음: 바뀌었는데 안 바뀐 듯한 공포
- 초침+과잉 종소리: 규칙과 오류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청각적 불편함

4. Editor’s Note: 나는 스미스인가, 마틴인가
이 연극을 보고 나면, ‘웃긴데 이상하다’가 아니라 ‘정상인데 이상하다’가 남을 거야. 근데 사실, 잘 보면 우리 삶이 딱 그렇잖아. 매일 똑같이 아침에 출근해서 인사하고, 보고하고, 맞장구치고, 웃는 척하고, 돌아오고...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닌데, 어느 순간 내가 그 안에서 지워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거지.
『대머리 여가수』가 진짜로 찌르는 지점은, ‘언어가 무너졌다’보다 언어가 멀쩡한 척 계속 작동한다는 거 아닐까? 문장도 예의도 규칙도 다 돌아가는데, 정작 그 안에 사람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인 거지.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무한 루프’로만 보지 않으려고 해. 오히려 아주 작은 반대로 읽고 싶어. 내 말에 나를 다시 넣는 연습. 누군가에게 ‘식사하셨어요’라고 물을 때, 진짜로 궁금해서 묻는 날이 한 번이라도 생기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스미스도 마틴도 아닌 ‘나’가 남아 있지 않을까?
[Scene Keyword]
The Bald Soprano, Ionesco, Symmetry, Deadpan, Flat Lighting, Clock, Loop, Absurdism, Hollow Dialogue, Replaceable People
작품 : Eugène Ionesco, The Bald Soprano (희곡)
※ 본 글은 장면 해석/비평 목적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며, 원문 인용은 최소화했습니다.
※ 본 글은 폭력·혐오·선정적 요소를 다루지 않으며, 문학·연극 장면 분석과 촬영 연출 연구를 위한 정보성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