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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37] 장 주네 『하녀들』 : 거울 속의 연극놀이, 반사(Reflection)와 왜곡된 자아의 미장센

by 필름회색소음 2026. 1. 5.

1. 프롤로그: 너는 오늘, 어떤 얼굴로 살아남았어?

가끔 거울을 보면 내 모습이 어색할 때가 있지 않아? 나는 특히 영업일을 할 때 더 그랬던 것 같아.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 주느라 하루 종일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히 맞춰주다가 집에 와서 불 꺼진 화면에 비친 얼굴을 보면, 내가 방금까지 '나'의 모습이었는지, 혹은 '가면'의 모습이었는지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

나만 그런건 아니지? 결국 우리는 일상 속에서 '상황마다' 다른 역할을 갈아입고 살잖아. 문제는 한 역할을 너무 오래 끼고 있으면, 어디부터가 가면이고 어디까지가 내 진짜 피부였는지 잊어버린다는 거지.

 

장 주네의 『하녀들』은 그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인 것 같아. 이건 계급 이야기이기도 하고, 욕망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복제하다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이야기’로 읽혀.

두 하녀는 마담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해서 마담의 옷을 입고, 마담의 말투를 흉내 내고, 마담의 권력을 빌려 서로를 짓누르지. 그런데 그 흉내가 단순한 장난으로 남지 않는 거야. 역할놀이가 커질수록, 현실은 더 얇아지고, 결국 남는 건 거울 속에서만 겨우 유지되는 자아인 거지.

 

오늘 내가 카메라에 담고 싶은 장면이 바로 ‘거울이 만들어낸 사람’이야. 거울은 사실을 보여주는 물건 같지만, 이 작품에선 반대로 내가 믿고 싶은 얼굴만 선택해서 보여주는 장치가 되거든. 그래서 나는 한 장면을 예쁘게 찍기보다, 반사와 겹침으로 어지럽게 만들고 싶어. 보는 사람이 편하지 않게, 그래서 더 정확하게 느껴졌으면 좋겠어.

[시놉시스 | 마담의 방에서 시작된 ‘대체 삶’]
무대화려한 침실이다. 하지만 화려함은 살아 있는 향기가 아니라, 반짝이는 표면에 가깝다.

하녀 자매 끌레르솔랑주는 마담이 외출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마담의 옷과 액세서리를 꺼내 입고 ‘마담’과 ‘하녀’를 번갈아 맡아 연극놀이를 벌인다. 놀이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찬양하다가, 바로 다음 순간 모욕하고 짓밟는다. 마담을 흉내 내는 말투와 손짓은 점점 더 과해지고, ‘마담을 해치우는 상상’은 놀이의 고정된 결말처럼 반복된다.

현실의 마담친절을 가장하지만, 그 친절은 거리감을 숨기는 포장일뿐이다. 두 자매는 현실을 바꿔보려 하지만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마지막에는 놀이가 현실을 삼켜버린다. 끌레르는 끝내 마담’이라는 껍질을 벗지 못한 채, 스스로 선택한 파국 속으로 들어가고, 솔랑주텅 빈 공간을 향해 긴 독백을 남긴다.

오늘 내가 찍고 싶은 컷끌레르 붉은 드레스를 입고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순간이야. 중요한 건 화려함이 아니라, 거울 속 표정이 현실의 표정과 ‘어긋나는’ 그 틈이야. 현실의 끌레르는 숨을 삼키고 있는데, 거울 속 끌레르는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든지. 혹은 반대로, 현실은 미소인데 거울 속만 공포로 굳어 있다든지. 그 불일치한 프레임 안에서 동시에 보이게 만들어서, 분열된 자아가 ‘현상’으로 느껴지게 연출해보고 싶어.


2. Scene Reading: 향기 없는 꽃, 몸에 맞지 않는 드레스

하녀들』의 장면에는 예쁜 물건이 많은데,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지지는 않아. 예를 들어 꽃은 넘치는데 이상하게 공기는 차갑게 비어있고, 레이스가 있어도 살결이 느껴지지 않는 식인 거지. 나는 여기서 핵심을 ‘가짜의 촉감’이라고 생각해. 종이꽃멀리서 볼 땐 화려하지만 가까이 가면 바스락거리고, 예쁜 조명 아래선 더 화려해 보이는데 한 걸음만 가까워지면 바로 들통나지. 그런 게 하녀들이 꿈꾸는 세계의 질감이 아닐까 싶어.

 

그리고 붉은 드레스는 단순한 욕망의 상징으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몸이 ‘자기 것이 아닌 삶’을 입어보는 순간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 그래서 이 드레스는... 하녀와 완벽하게 핏이 맞으면 안 될 것 같아. 어깨가 조금 뜨거나, 허리가 애매하게 남거나, 등 지퍼가 끝까지 올라가지 않는 디테일이 계속 보여야 좋을 것 같아. 바로 그 어긋남이 메시지가 되기도 하거든. '저건 성취가 아니라, 빌려 입은 환상이다'라고 말이야.


가짜의 종말 : 어두운 나무 바닥 위에 깨진 앤티크 찻잔과 피처럼 보이는 액체, 젖은 종이꽃들이 흩어져 거짓된 아름다움과 죽음을 암시하는 매크로 장면.


3. Director’s Cut: 거울은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골라서’ 보여준다

연출의 출발점은 이거야! 관객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끝까지 확신하지 못하게 만들기. 이 작품이 균열을 보여주는 지점은 큰 사건으로 한 번에 터지는 게 아니라, 확신이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에서 나오거든. 그래서 나는 카메라, , 소리전부 거울 쪽으로 끌고 갈 거야. 거울이 무대를 지배하게 만드는 거지!

🎥 Camera Work: 직접이 아니라 반사로, 단일이 아니라 겹침으로

첫 번째 규칙: 장면은 인물 위주로 쓰지 않을 거야. 초반부터 거울, 유리, 광택 난 가구 표면을 적극적으로 쓰고, 관객이 인물을 볼 때마다 한 번씩 우회하게 만드는 거지. 현실의 인물은 프레임 가장자리로 밀고, 거울 속 얼굴이 프레임의 중심을 차지하게 두는 식으로 말이야.

 

두 번째 규칙: 초점 이동(Rack Focus)은 감정이 아니라 ‘정체성’에 걸 거야. 예를 들어, 끌레르가 마담처럼 말하려는 순간에는 현실의 끌레르는 흐려지고, 거울 속 끌레르만 또렷해져. 반대로, 현실로 돌아오려는 찰나엔 거울이 흐려지고, 현실이 선명해지는 거지. 관객이 대사를 이해하기 전에, 초점이 '누가 누구인지'를 흔들어놓게.

 

왜곡의 선택: 아주 가까운 클로즈업에서는 24mm 안팎의 살짝 넓은 화각을 써서 얼굴의 중심이 미세하게 과장되게 만들 거야. 다만 웃기게 만드는 왜곡의 느낌은 아니고, ‘가까울수록 불안해지는 왜곡’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 거울 속 얼굴이 조금 길어 보이거나, 눈이 조금만 낯설게 커 보이는 정도로, ‘불편한 진짜’를 만드는 거지.

 

마지막 장면의 프레이밍: 솔랑주의 독백은 웅장하게 찍지 않을 거야. 오히려 프레임을 좁혀서 숨이 막히게 만들 거야. 거울이든 문틀이든 무엇이든, 계속 ‘’로 가둬서, 말이 넓은 공간으로 퍼지지 못하게 막을 거야. 그게 이 방의 운명이거든.

💡 Lighting: 촛불의 흔들림, 붉은 방의 압력, 그리고 거울의 반사광

빛의 온도: 기본은 따뜻한 촛불 계열이야. 하지만 ‘따뜻함’이 아니라 숨 막히는 밀도를 만들 거야. 촛불처럼 흔들리는 키 라이트를 두고, 벽과 커튼 쪽에는 붉은 기운이 아주 은근하게 남도록 톤을 깔 거야. 방이 ‘아늑한 침실’이 아니라 ‘붉은 상자’처럼 느껴지게.

 

거울을 믿지 않기: 거울은 빛을 돌려주잖아. 그래서 나는 거울이 뿜는 반사광을 일부러 거칠게 사용할 거야. 인물의 볼이나 이마에 반사광이 지나가면서 잠깐씩 표정을 ‘찢어’ 놓게. 그 순간 관객은 느끼게 돼. ‘아, 이 얼굴은 고정된 얼굴이 아니구나’라고.

 

붉은 드레스의 처리: 드레스는 계속 예쁘게 빛나면 안 돼. 반짝임이 아니라 무게가 보여야 해. 그래서 드레스의 하이라이트는 과감하게 줄이고, 주름과 두께가 드러나는 방향으로 톤을 잡을 거야. 아름다움보다 압박감을 남기는 옷이 되게.

🔊 Sound: 시간의 소리, 종이꽃의 소리, 그리고 ‘마담이 올 것 같은’ 공기

시간을 들려주기: 이 집의 불안마담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데서 시작돼. 그래서 나는 시계를 활용할 거야. 점점 가까워지는 압박으로 사용하는 거지. 초반엔 멀리서 희미하게, 중반엔 방 안에서 또렷하게,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관객의 귀 바로 옆에서 울리는 것처럼!

 

가짜의 소리: 종이꽃은 향기가 없잖아. 대신 손끝이 스칠 때 '바스락' 같은 얇은 소리가 남지. 여기선 치장할수록 더 나는 소리.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얇게 깔 거야. 관객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대신 계속되면 불편함은 느낄 정도? 그 화려함의 속이 사실은 비어 있다는 걸, 귀가 먼저 알아차리게 말이야.

 

호흡과 침묵: 둘이 서로를 모욕할수록 숨은 짧아지고, 웃음은 텁텁해져. 그때 오히려 음악을 쓰지 않고, 숨이 어긋나는 순간을 크게 잡을 거야. 그리고 마담의 기척이 스치면, 딱 한 번 정적을 남길 거야. 그 정적은 ‘멈춤’이 아니라 ‘들키기 직전의 얼어붙음’이 되게.


두 개의 얼굴 :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입은 하녀가 화장대 앞에 앉아 있고, 거울 속에는 공포에 질린 왜곡된 얼굴이 비치는 심리적 공포의 초현실적 장면.


4. Editor’s Note: 거울 앞에서 오래 서 있으면, 결국 누가 남을까

나는 『하녀들』이 자기 자신에게 잔인해지는 방식너무 선명해서 잔인하다고 느껴. 끌레르는 끝까지 ‘마담’이 되고 싶어 했고, 결국 ‘마담이 되는 방식’으로 파국을 선택해. 그 선택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한 가지는 분명하지. 그녀는 현실에서 숨 쉬는 것보다, 거울 속에서 살아남는 쪽을 택했다는 거야.

 

우리도 비슷한 순간이 있지 않아? 누군가에게 좋아 보이려고 만든 얼굴이, 어느 날부터는 나를 지키는 가면이 아니라, 나를 가두는 껍데기가 되는 순간 말이야. 그래서 혹시라도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한 번쯤 물어봤으면 해. 오늘 하루 내가 연기한 얼굴은, 나를 살려줬나. 아니면 나를 조금씩 깎아먹었나.

 

거울은 친절한 척하면서, 사실 제일 냉정한 관객이야.

 

[Scene Keyword]

Jean Genet, The Maids, Mirror Mise-en-scene, Reflection, Distortion, Role Play, Artificial Flowers, Red Dress, Psychological Theatre, Stage Film

 

 

 

작품 : Jean Genet, The Maids (희곡)
※ 본 글은 장면 해석·비평 및 연출 연구 목적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며, 작품 속 사건은 현실의 위해 행위를 조장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