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명함이 사라진 뒤에도, 너는 너로 남을 수 있을까
2026년 새해에는 무엇을 쌓고 있어? 쌓지 못한 것들? 혹은 쌓여 있으나 더 쌓아야 할 것들...? 예를 들면 직함이나 경력, 통장 잔고, 집의 크기, 팔로워 숫자 등. 아, 내가 이 말을 꺼내는 건 그게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야. 그 덕분에 버티는 날도 많으니까. 다만 가끔은 말이야, 그 모든 게 ‘나’의 중심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오늘 살펴볼 작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해서.
만약 어떤 밤에, 그 중심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 있어? 내 이름 앞에 붙은 직함이나 호칭들이 사라지고, 내가 내세우던 배경이 한 장씩 떨어져 나가고, 결국 남는 게 ‘살아 있는 몸’ 하나뿐이라면. 그때도 우리는 스스로를 똑바로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야. ‘나는 누구다’라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인간에게 붙어 있던 모든 사회적 장식이 벗겨지는 과정을, 가장 잔인하게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아. 왕관을 벗는 순간, 그는 왕이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노인’으로 취급돼. 그리고 그때부터 세상은 냉정하게 말하지. ‘너의 자리는 여기까지’라고.
그래서 오늘 내가 카메라에 담고 싶은 건 ‘폭풍우(The Storm)’ 자체야. 리어의 안에서 뒤집히는 정신과, 바깥에서 그를 후려치는 비바람이 결국 한 덩어리로 섞이는 순간. 모든 권위가 해체되고 오직 ‘벌거벗은 생명’만 남는 자리. 그걸 제로 포인트(Zero Point)라고 부르고 싶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곳에서, 오히려 가장 많은 것이 드러나는 자리니까.
[시놉시스 | 왕관을 내려놓은 뒤에 시작되는 추락]
브리튼의 늙은 왕 리어는 세 딸에게 영토를 나눠주려 하고, 그 대가로 ‘사랑을 말로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첫째 고너릴과 둘째 리건은 달콤한 말로 땅을 얻지만, 막내 코델리아는 과장된 언어를 거부하고 침묵에 가까운 진실을 택한다. 그 진실은 벌로 돌아오고, 코델리아는 쫓겨난다.
권력을 넘겨준 뒤 리어는 자신의 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믿지만, 두 딸은 그 믿음을 차갑게 부숴버린다. 환대는 사라지고, 대접은 줄어들고, 리어의 사람들은 하나씩 흩어진다. 분노와 혼란 속에서 리어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로 뛰쳐나가고, 그곳에서 광대와 ‘미친 척’하는 거지 톰(에드거)을 만나며 무너진다. 그는 광기 속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보지 못했던 삶의 바닥을 바라보고, 뒤늦게 코델리아와 재회한다.
하지만 비극은 늘, 가장 늦은 순간에 가장 잔인한 얼굴로 찾아온다.
오늘 내가 찍고 싶은 컷은 3막의 폭풍우 장면이야. 리어가 하늘을 향해 외치는데, 그 외침이 ‘위엄’이 아니라 ‘맨몸’에서 나오는 소리로 들리는 순간. 젖어 무거워진 외투, 헝클어진 백발, 진흙이 튄 얼굴. 초광각 렌즈로 하늘과 땅을 과장되게 벌려놓고, 그 사이에 작은 인간을 한 점으로 수렴시키고 싶어.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아지는지, 그리고 그 작아짐이 얼마나 본질에 닿는지까지.
2. Scene Reading: ‘저기 벌거벗은 인간이 있다’라는 문장이 남기는 것
『리어왕』의 핵심 이미지 중 하나는 ‘벗겨짐’이야. 왕의 옷은 단순한 의상이 아니라, 권위의 껍질이거든. 리어는 배신을 겪으며 그 껍질을 하나씩 잃고, 폭풍우 속에서 ‘가난한 톰’을 만나는 순간, 그의 언어가 바뀌어. '명령'이 아닌 '생존'을 말하기 시작하는 거지.
그때 리어가 뱉는 말이 있지. ‘벌거벗은 인간’. 나는 이 말을 ‘어떤 보호도 없는 상태의 인간’이라고 해석하고 싶어. 지붕도, 지위도, 변명도 없이 남은 존재. 그게 리어가 처음으로 직면하는 인간의 본체인 거야. 왕이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 왕이어서 몰랐던 추위를 이제야 배운다는 게… 너무 늦어서 더 아프지.
폭풍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야. 이 장면에서 폭풍우는 리어의 내면을 밖으로 끌어내는 장치고, 동시에 세상이 권위를 얼마나 쉽게 지워버리는지 보여주는 힘이야. 왕이든 거지든, 비바람 앞에서는 똑같이 떨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 사실이 잔인하게 평등해서, 이 장면의 임팩트는 강하게 남아.

3. Director’s Cut: 우아함을 버리고, 감각을 맨바닥까지 끌고 간다
이 작품을 영상으로 옮긴다면, 관객이 리어처럼 춥고, 젖고, 정신이 흐트러지는 경험을 하게 만들고 싶어. 폭풍우 장면은 ‘설명’하는 장면이 아니라, ‘겪게’ 만드는 장면이어야 하니까.
🎥 Camera Work: 흔들리고, 젖고, 중심을 잃는 시야
핸드헬드의 원칙: 삼각대는 최대한 버릴 거야. 거칠게 흔들리는 핸드헬드로, 리어의 중심이 무너지는 만큼 프레임도 중심을 잃게 만들고 싶어. 다만 흔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붙잡을 곳이 없는 느낌’을 관객 몸에 남기는 것이 목적이야.
렌즈에 남는 비: 렌즈 앞에 맺힌 빗방울도 중요해. 물방울이 흐르면서 프레임이 잠깐씩 일그러지게. 관객의 시야가 깨끗하면, 이 장면은 그냥 배경화면으로 보일 수 있거든. 봐야 하는데 잘 안 보이는 상태가 곧 리어의 상태니까, 그 걸 그대로 경험케 해주는 거지.
초광각의 사용: 폭풍우 장면의 기본 화각은 초광각으로 갈 거야. 하늘은 더 크게, 땅은 더 넓게, 인간은 더 작게. 그 과장된 원근이 리어의 무력감을 시각적으로 못 박아주거든. 대신 얼굴 클로즈업으로 들어갈 때는 화각을 조금 좁혀서, ‘자연의 거대함’에서 ‘인간의 떨림’으로 온도를 바꿔줄 거야.
💡 Lighting: 번쩍이고, 끊기고, 어둠이 삼킨다
지속광을 줄이기: 이 장면에서 밝음은 자칫 ‘안정’으로 느껴질 수 있어. 그래서 지속광은 최대한 줄이고, 세상이 어둠 속에 잠기게 둘 거야. 대신 번개처럼 터지는 순간광으로 리어의 얼굴을 잠깐씩 드러내고, 다시 삼켜버리게 만들 거야. 보였다가 사라지는 얼굴이 곧 끊어지는 이성의 형태니까.
빛의 질감: 번쩍이는 순간의 빛은 예쁘면 안 돼. 피부의 질감이 거칠게 드러나고, 눈 밑의 그늘이 더 깊어 보이고, 입술이 차갑게 갈라진 것처럼 보이게. ‘사람이 추위에 어떻게 망가지는지’가 빛의 정확한 잔인함으로 남았으면 해.
🔊 Sound: 말이 지는 소리, 그리고 잠깐의 무음
대사가 지는 순간: 리어의 외침은 또렷하면 안 돼. 바람, 빗소리, 천둥이 더 커서 왕의 목소리가 자연에게 눌려야 해. ‘말’이 권력인 사람에게, 말이 무력해지는 순간을 들려주고 싶어. 관객이 대사를 다 못 들어도 괜찮아. 오히려 그게 맞아.
저역의 압박: 천둥을 단순한 효과음으로 두지 않고, 가슴을 누르는 저역으로 설계할 거야. 귀로 듣는 공포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압박. 그 압박이 리어의 오만을 천천히 무너뜨리는 힘이 되게.
정적의 한 번: 그리고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 폭풍우가 계속 큰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잠깐 ‘뚝’ 끊겨야 해. 그 짧은 공백에서 관객은 처음으로 리어의 숨을 듣게 되거든. 그때 비로소 ‘벌거벗은 인간’이 화면에 남아. 소리가 커서 안 보이던 사람이, 소리가 꺼지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거지.

4. Editor’s Note: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에서야, 손이 닿는 것들
리어는 모든 걸 잃고 무너진 뒤에야, 가난한 사람들의 추위를 생각하고, 코델리아의 진심을 알아봐. 너무 늦어서 더 아프지.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정말 잔인한 건, 그 깨달음을 ‘선물’처럼 주지 않는다는 데 있어. 깨닫는다고 해서, 삶이 친절해지진 않거든.
나는 이 작품이 한 가지를 끝까지 밀어붙인다고 느껴. 폭풍우가 아니면 벗겨지지 않는 껍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껍질이 벗겨진 자리에서야, 우리가 진짜로 붙잡아야 했던 것들이 손에 닿는다는 것.
만약 요즘 ‘내가 쌓아온 것들이 흔들리는 느낌’ 속에 있다면, 그걸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해.
어쩌면 지금은 나를 무너뜨리려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중심을 가짜에서 진짜로 옮기는 시간일 수도 있으니까.
[Scene Keyword]
William Shakespeare, King Lear, The Storm, Unaccommodated Man, Zero Point, Deconstruction, Ultra Wide Lens, Handheld Camera, Lightning Lighting, Sound Design
작품 : William Shakespeare, King Lear (희곡)
※ 본 글은 장면 해석·비평 목적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며, 작품 속 사건은 현실의 위해 행위를 조장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