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너의 신은, 지금 어디에 숨겨져 있나?
언제부터인가 '영포티'라는 용어가 안 좋은 의미 또는 긁는 의미로 변질되었더라고. 나이와 상관 없이 젊음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왜 이렇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는지 한동안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있어. 우리가 ‘어른답게’ 산다는 말 속에는, 사실 ‘너무 뜨겁지 말 것’이 함께 들어 있는 것 같아.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는 표정, 심장이 먼저 달려가는 선택, 누가 봐도 좀 과하다고 할 만큼의 몰입 같은 것들. 한때는 그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뜨거움이 자꾸 ‘관리’의 대상이 되잖아. 적당히 눌러두고,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말끔한 얼굴로 정리해 버리는 식으로 말이야. 그런데 『에쿠우스』는 그 눌러둔 뜨거움이 어느 날 신처럼 솟구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주 냉정하게 보여 줘.
이 작품의 출발점은 한 소년 알런이 저지른 심각한 사건이야. 누구나 처음엔 ‘왜 그런 일을’이라고 묻게 되지. 그런데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질문이 바뀌어. ‘왜’보다 무서운 건 ‘그 아이의 세계가 얼마나 단단했길래’라는 쪽이거든.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의사 다이사트에게 돌아가. 소년을 ‘평범’하게 돌려놓는 과정이, 정말로 구원인지. 혹은 누군가의 뜨거움을 무난함으로 바꾸는 작업인지. 『에쿠우스』는 그걸 결론 내리지 않고, 관객을 끝까지 흔들어 놓는 방식으로 남겨.
그래서 오늘 내가 담고 싶은 건 밤의 공기야. 땀에 젖은 피부가 식는 순간의 서늘함, 마구간의 먼지와 가죽 냄새가 엉겨 붙는 느낌, 그리고 말의 얼굴을 대신하는 금속성 가면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차가운 결. 그 순간만큼은 병실의 논리보다, 제의의 리듬이 사람을 설득해야 하거든.
[시놉시스 | 한 소년의 세계, 그리고 흔들리는 치료자의 윤리]
17세 소년 알런 스트랑은 마구간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사회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법정은 그를 처벌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정신과적 평가와 치료가 가능한 절차로 넘긴다.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는 알런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소년이 말을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름을 붙인 절대적 존재로 받아들여 왔음을 알게 된다.
알런에게 말은 사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언제나 지켜보는 시선’처럼 느껴지는 압박이기도 하다. 그 압박이 극단으로 치닫는 지점에서 사건이 터지고, 다이사트는 치료를 통해 소년을 사회가 말하는 ‘정상’에 가깝게 되돌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그러나 그 확신은 곧 질문이 된다. 소년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소년에게 남아 있던 가장 뜨거운 세계까지 함께 꺼버리는 건 아닌지. 치료를 진행할수록 다이사트는 오히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무난함’에 익숙해진 어른의 고요가 얼마나 공허할 수 있는지 마주한다.
오늘 내가 담고싶은 장면은 알런이 한밤중, 마구간의 문턱을 넘는 순간이야. 달빛 같은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고, 호박색(Amber) 조명으로 ‘신전의 온도’를 만들 거야. 말의 금속 가면이 그 빛을 받아 차갑게 반사하고, 소년의 땀이 같은 빛을 받아 뜨겁게 번지게. 그 대비가 한 프레임 안에서 부딪히는 순간, 관객은 알게 돼. 이건 단순한 동물과 소년의 장면이 아니라, 한 사람의 믿음이 몸으로 솟는 장면이라는 걸.
2. Scene Reading: ‘눈’은 시선이 되고, 시선은 심판이 된다
『에쿠우스』의 중심에는 늘 ‘본다’라는 감각이 있어. 알런에게 말의 눈은 단순히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그가 숨기고 싶은 마음까지도 꿰뚫는 것 같은 심판의 감각이 돼. 그래서 이 작품에서 ‘시선’은 감정이 아니라 압력으로 작동하지.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는 느낌,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이 점점 구체적인 ‘규칙’으로 굳어지는 과정. 알런은 결국 그 압력 안에서 자신만의 신을 만들고, 동시에 그 신 때문에 무너지지.
여기서 무대적 장치가 정말 탁월해. 말은 ‘실제’가 아니라 배우가 만든 형상이잖아. 철제 라인으로 짜인 가면, 높은 굽, 구조적인 실루엣. 따뜻한 털의 세계가 아니라 금속의 세계로 말이 재구성되는 순간, 관객은 본능적으로 느끼게 될 거야. 이 존재는 귀여움이 아니라 숭배와 두려움의 혼합이라는 걸. 그리고 그 금속성은 알런의 내면을 대신해 말해 줘.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면 서늘한 것, 반짝이지만 만지면 차가운 것. 『에쿠우스』는 그 물성 하나로 ‘신’의 성질을 설명해 버려.

3. Director’s Cut: 마구간을 ‘현장’이 아니라 ‘신전’으로 바꾸는 설계
내 연출의 원칙은 단순해. 두 공간을 서로 다른 물리 법칙으로 찍는 거야. 다이사트의 병원은 정리된 직선, 건조한 공기, 논리로 밀어붙이는 질문의 공간이야. 반대로 마구간은 곡선, 습기, 리듬, 그리고 몸이 먼저 반응하는 공간이어야 해. 이 대비가 선명할수록 관객은 ‘치료’라는 단어를 더 불편하게 느끼게 될 거야.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질문이 커지니까.
🎥 Camera Work: 숭배의 각도, 질감의 거리, 그리고 눈을 피하지 않는 프레이밍
- 로우 앵글 : 알런이 말을 올려다보는 순간, 카메라도 함께 낮아져야 해. 단순히 웅장하게 보이려는 게 아니라, 관객이 그 시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게 만들기 위해서. 로우 앵글로 금속 가면의 구조가 프레임을 채울 거야.
- 질감 : 마구간 장면에서 감각을 쌓을 거야. 피부 위에 맺힌 땀, 가죽의 까칠한 결, 금속의 차가운 선이 번갈아 클로즈업으로 들어오면 관객은 체감을 할 수 있는 거지 . 그 체감이 곧 알런의 세계가 되는 거야.
- 병원은 고정, 마구간은 호흡 : 병원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고정 쇼트로 ‘정상’의 질서를 보여주고, 마구간에서는 미세하게 살아 있는 핸드헬드로 ‘본능’의 리듬을 보여줄 거야. 흔들림이 충동의 박자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게 포인트야.
💡 Lighting: 호박빛의 밀도, 금속을 태우는 역광, 그리고 연무로 만드는 제의의 공기
- 열기를 표현 할 호박빛 : 나는 마구간의 기본 톤을 호박색으로 잡을 거야. 노란빛이 아니라, 피부에 얇게 들러붙는 끈적한 열감으로. 이 빛이 있으면 관객은 이유도 모른 채 숨이 조금 답답해질 거야. 그 답답함이 제의의 시작인 거지.
- 금속 가면을 림 라이트로 ‘윤곽’ 세우기 : 표정이 없는 가면은 빛으로 표정을 만들어야 해. 역광으로 금속의 라인을 얇게 태우면, 가면은 얼핏 신의 구조처럼 보일 거야. 동시에 알런의 어깨와 목덜미에도 같은 역광이 걸리게 해서, 소년이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느낌을 남길 거야.
- 연무 : 마구간의 공기는 비어 있으면 안 돼. 얇은 연무를 깔아 빛기둥이 보이게 만들면, 공간이 단번에 신전처럼 변해. 배우의 숨결이 그 연무를 가르며 지나갈 때, 관객은 장면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거지.
🔊 Sound: 발굽의 리듬, 금속의 마찰, 그리고 ‘기도 같은’ 허밍
- 병원은 소리 절제 : 병원에서는 소리가 많지 않아야 해. 대신 작은 소리가 지나치게 또렷해야 해.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 의자의 미세한 삐걱임, 숨이 멈칫하는 순간. 그런 소리들이 ‘정상’의 질서를 지켜주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가두는 테두리처럼 느껴지게 만들 거야.
- 마구간 : 말의 움직임은 바닥을 울리는 ‘쿵’과 얇게 깔리는 허밍을 겹쳐서, 관객의 심장이 그 흐름을 따라가게 만들 거야. 거기에 금속 가면이 아주 작게 내는 ‘짤깍’ 같은 마찰음을 섞으면, 장면이 갑자기 기계적인 제의처럼 변하겠지. 아름다움이 아니라 압박감으로 말이야.
- ‘시선’은 소리의 거리로 : 알런이 압박을 느끼는 순간엔 소리를 키우지 않고, 소리를 ‘가깝게’ 당길 거야. 관객의 귀 옆에서 울리는 듯한 룸 톤, 피부 가까이에 붙는 저역. 그렇게 소리가 붙는 순간 관객은 느낄 거야. 이건 밖에서 오는 소음이 아니라, 안에서 커지는 압력이라는 걸.

4. Editor’s Note: 너를 살린 열정과, 너를 안전하게 만든 삶 사이에서
다이사트는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소년을 정리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정리가 무엇을 지우는지 알아. 치료는 통증을 낮추는 대신, 때로는 한 사람이 세계를 느끼는 방식까지 무난하게 평탄화해버릴 수 있거든.
우리도 비슷하지 않아? 튀지 않기 위해, 안전해 보이기 위해, 결국 마음의 온도를 스스로 낮추는 순간들이 있잖아. 남들이 보기엔 멀쩡해지고, 삶은 관리되는데,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심장이 덜 뛰는 거지. 그래서 이 작품은 조용히 묻는 것 같아. ‘너 안에 아직도 신전이 있니?’ 아니면 이미 너무 오래 닫아두어서, 열어도 아무 공기감이 느껴지지 않는 방이 되었거나...
내 안의 마구간을 한 번만 들여다보고 싶어. 그곳이 텅 빈 창고가 아니라, 아직은 숨이 남아 있는 방이기를. 그리고 그 숨이 있다면, 그건 위험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고.
[Scene Keyword]
Peter Shaffer, Equus, Ritual Lighting, Amber Light, Metallic Mask, Stage Mise-en-scene, Sound Design, Psychological Theatre, Director Notes, Modern Tragedy
작품 : Peter Shaffer, Equus (희곡)
※ 본 글은 장면 해석·비평 및 연출 연구 목적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며, 원문 인용은 최소화했습니다.
※ 본문은 작품 분석을 위한 서술로, 위해 행위를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