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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40] 유치진 『토막』 : 흙무덤 같은 집, 폐쇄된 공간의 텍스처와 희망의 부재

by 필름회색소음 2026. 1. 6.

1. 프롤로그: 빛이 잘 닿지 않는 방이 사람을 바꾼다

나는 40대인데도 여전히 원룸생활을 하고 있어. 요즘은 워낙 1인 가구가 많다 보니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사실 많은 경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긴 해. 초등학교 때 배우기 론 의식주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라고 알았지만, 그중 '주'가 되는 집은 과연 기본적인 요소가 맞는건가 싶을 정도로 많은 고민을 하게 하지. 나만 그럴까? 월세, 전세, 대출, 이사... ‘사는 환경’이 중요한 이유는 ‘사는 방식’까지 바꿔버리는 걸 너무 자주 경험해 봤기 때문 아닐까?

 

유치진의 『토막』은 그 문제를 더 아래로 끌고 내려가는 작품인 것 같아. 반지하보다 더 깊고, 창문보다 문틈이 먼저 떠오르는 집. 땅을 파고, 얇은 재료로 겨우 덮어 만든 토막(土幕)은 단지 가난을 설명하는 배경이 아니라, 숨 쉬는 공간 자체가 이미 한계인 곳처럼 그려지거든.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무겁게 보는 건 ‘공간의 조건’이야. 천장이 낮으니 당연히 자꾸 몸을 접게 되고, 빛이 부족하면 무슨 표정이든 굳어보이거든. 추운 날씨에 바람이 틈으로 들어오면 뭘 하지도 못해. 『토막』은 그런 물리적인 조건이 인물의 마음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보여 줘. 그래서 오늘은 흙벽의 결, 젖은 공기의 무게, 좁은 천장의 압박 같은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어.

그리고 결말에 들어오는 하얀 상자... 이 작품에서 흰색은 ‘깨끗함’이 아니라, 갈색과 검정으로 굳어버린 세계에 갑자기 끼어드는 차가운 통지거든. 그 대비를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찍어낼 거야.

[시놉시스 |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사람이, 상자로 도착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 시골 마을. 명서네 가족은 땅을 파서 만든 토막집에서 산다. 생활은 늘 빠듯하고, 집 밖에서는 빚 독촉과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족을 버티게 하는 건 하나다. 일본으로 돈을 벌러 떠난 아들 명수가 돌아오면, 적어도 이 집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들려오는 말들은 점점 불안해진다. 명수가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렸다는 소식, 연락이 끊겼다는 이야기,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단정하기 어려운 소문들. 가족은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채 기다림만 길어지고, 그 기다림이 토막집의 공기와 함께 더 답답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배달된 소포 하나가 집 안의 시간을 멈추게 한다. 가족이 바라던 ‘귀환’이 아니라, 명수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하얀 상자가 도착한 것이다. 어머니는 그 상자를 끌어안고 무너지고, 좁은 집은 더 좁아진다. 그 순간 토막은 가난의 은신처가 아니라,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방으로 굳어버린다.

오늘 내가 찍고 싶은 컷은 결말의 한가운데야. 토막집 안쪽, 흙바닥에 주저앉은 어머니가 하얀 상자를 품에 안는 순간. 주변 소품을 일부러 더 많이 보여주기보다, 상자와 어머니의 몸만 남기고 다른 건 어둠으로 내려앉게 만들 거야. 이 장면은 ‘정지’가 더 잘 어울리니까...


2. Scene Reading: 낮은 천장이 만든 자세, 흰색이 만든 이질감

토막』은 사건이 크게 터지기 전에, 이미 무대가 결론을 말해주는 것 같아. 토막집은 높이가 낮고, 출입구가 작고, 실내가 정돈되기 어렵지. 그러면 배우의 동선도 달라져. 당당하게 서기보다는 앉거나 웅크리는 자세가 기본이 되고, 걸어 다니는 동작도 짧아지거든. 그 ‘자세’ 자체가 이 가족의 삶을 보여주는 셈이야. 나는 여기서 핵심을 수평으로 눌리는 생활이라고 읽었어. 위로 뻗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세계.

 

도 마찬가지야. 흙벽, 짚, 낡은 옷, 그을린 그릇. 화면이 자연스럽게 갈색과 회색으로 굳어지지. 그래서 배경과는 사뭇 다른 낯선 하얀 상자는 굳이 충격적인 연출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 이 작품에서 흰색은 차갑게 분리된 물건처럼 보이거든. 나는 그 이질감을 과장하지 않고, 대비가 스스로 말하게 두고 싶어.


하얀 상자, 차가운 통지 : 흙바닥과 짚자리 위 어둠 속에서 하얀 나무 상자 하나만이 위에서 떨어지는 좁은 빛에 차갑게 드러나는 매크로 장면.


3. Director’s Cut: 흙냄새가 ‘난다’가 아니라, 흙이 ‘보이게’ 찍기

이 장면을 영상으로 옮길 때 가장 중요한 건 미사여구가 아니야. 궂이 애써서 ‘불쌍하다’는 감정부터 밀어붙이면 오히려 반감이 들 거야. 대신 공간을 정확히 보여주면, 감정은 뒤에서 따라오는 거지. 그래서 나는 ‘가난을 표현’하려고 애쓰기보다, 토막집의 구조와 재질이 화면에서 정직하게 남도록 설계하고 싶어.

🎥 Camera Work: 위에서 내려다보되, 멀찍이 두지 않는다

- 시점은 살짝 위, 거리감은 가깝게: 토막집은 ‘구덩이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어. 그래서 기본 시점은 살짝 높은 앵글로 잡되, 인물을 멀리 떨어뜨리지 않을 거야. 멀리서 내려다보면 동정으로 보일 수 있거든. 대신 35mm~40mm 정도의 표준에 가까운 화각으로, 천장과 벽이 프레임에 자연스럽게 걸리게 만들어서 답답함을 ‘연출’이 아니라 ‘구조’로 느끼게 할 거야.

- 프레임 안의 프레임: 문틀, 기둥, 낮은 천장선 같은 것들을 일부러 프레임 가장자리에 남겨서 인물이 자꾸 ‘테두리’에 닿게 만들 거야. 대사가 길어져도 화면은 넓어지지 않고, 인물이 움직여도 여유가 생기지 않는 식으로. 관객이 ‘여긴 숨이 쉬기 어렵다’고 느끼는 건, 바로 이런 프레임의 여백 부족에서 나오니까.

- 마지막 컷은 롱테이크: 결말의 어머니 울음소리를 확장하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움직임이 거의 없는 롱테이크로, 상자와 몸이 굳어 있는 시간을 보여주는 거지. 그 정적이 길어질수록 관객은 상황을 더 또렷하게 받아들이게 될 테니까.

💡 Lighting: ‘밝히는 조명’이 아니라 ‘들어오는 조명’

- 빛의 출처: 토막집에서 조명은 많을수록 거짓말처럼 보일 것 같아. 그래서 빛은 기본적으로 문틈과 작은 구멍에서 들어오게 만들 거야. 한 줄기 빛이 바닥을 긁고 지나가면, 그 위에 먼지가 떠다니고, 흙벽의 요철이 드러나지. 그게 이 공간의 진짜 표정일 거야.

- 그림자를 깊게: 인물의 얼굴을 표현할 때, 눈 밑과 볼에 생기는 그늘을 그대로 두고, 방구석은 끝까지 어둡게 남겨둘 거야. 이 작품의 정서는 ‘드러남’보다 가려짐에 가깝거든. 말을 해도 다 전해지지 않는 느낌.

- 결말의 탑 라이트는 좁게: 탑 라이트는 좋은 선택일 것 같아. 다만 크게 쓰지 않고, 정말 좁게... 어머니의 등선과 상자의 면만 잡히고, 주변 살림살이는 형태만 겨우 남게. 이렇게 하면 흰 상자가 ‘반짝’ 뜨는 게 아니라, 어둠 속에서 더 차갑게 분리되어 보이겠지.

🔊 Sound: 음악 대신, 방의 소리를 남긴다

- 룸 톤을 먼저: 이 장면에서 음악이 들어오는 순간, 강제로 감정을 푸쉬하게 될 것 같아. 일부러 그렇게도 하지만, 여기선 그걸 피할 거야. 대신 토막집의 소리를 남기겠어. 바람이 틈으로 스치며 내는 얇은 소리, 짚이 몸에 눌릴 때 나는 마찰음, 누가 숨을 들이켰다가 참는 소리. 이런 것들이 쌓이면 보는 이들은 느끼게 될 테니까.

- 기침과 침묵의 간격: 늙은 명서의 마른기침은 ‘반복되는 생활 소리’처럼 둘 거야. 기침이 한 번 나오고 난 뒤의 짧은 침묵은 이 좁은 배경을 더 답답하게 만드는 좋은 요소가 될 거야.

- 상자가 놓이는 소리: 하얀 상자가 바닥이나 멍석 위에 내려앉을 때, 소리는 둔탁하고 건조하게 잡을 거야. ‘쿵’이라기보다 ‘툭’에 가까운 느낌? 그리고 그다음은, 앞서 말한 것처럼 억지로 울음을 키우지 말고 숨이 흐트러지는 소리만 남겨도 충분해.


토막집의 무게 : 1930년대 식민지 시대의 낮은 흙집 안에서 좁은 틈으로 들어온 한 줄기 자연광이 먼지 낀 공기를 가르며 바닥 일부만 비추는 답답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장면.


4. Editor’s Note: 집이 버티게 하는 건 벽이 아니라, 내일의 그림자다

토막』을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이야기가 옛날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야. 이 가족이 버틴 건 기둥이 단단해서가 아니고, 난방이 돼서도 아니지. 결국 그들을 붙잡고 있던 건 기다림이었어. 그래... 누군가가 돌아오면 달라질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있는 동안만, 이 집은 ‘사는 곳’으로 남아 있었던 거야.

 

하지만 그 기다림이 상자로 도착하는 순간, 집의 성격이 바뀌는 거지. 나는 이 지점을... '지나치게' 슬프게 말하고 싶진 않아. 오히려 담담하게 정리하고 싶어. 집을 집답게 만드는 건 크기나 재료가 아니라, 내일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라는 것. 유치진은 그 여지가 사라지는 순간을, 아주 현실적인 공간으로 보여줬고, 그게 오래 남는 것 같아.

 

[Scene Keyword]

Yoo Chi-jin, Tomak, Korean Realism, Closed Space, Low Ceiling, Texture, High Angle, Motivated Lighting, Sound Design, Stage Film

 

 

 

작품 : 유치진, 토막 (희곡)
※ 본 글은 장면 해석·비평 목적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며, 원문 인용은 최소화했습니다.
※ 본문은 작품의 서사와 시대상을 분석하는 글로, 위해 행위를 조장하거나 미화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