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새벽의 도시에서, 사람은 왜 더 솔직해질까
낮에는 그렇게 활기차던 거리의 '조용한 새벽'을 보며 이질감을 느껴본 적 있어? 난 특히 밤새 영상편집을 하다가 바람 쐬러 잠시 밖을 나가면 그런 경험을 자주 했거든. 움직이던 모든 것들이 멈춰 있고, 간혹 길고양이의 경계 정도만 눈에 들어오지. 이런 새벽이 주는 이질감은 거리의 환경 뿐만은 아닌 것 같아. 낮에는 ‘괜찮은 척’으로 버티던 마음이, 유독 이 시간엔 쉽게 들키는 것 같거든. 어두움은 가려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주 작은 욕망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놓기도 하니까.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그 새벽의 감각을 무대 위에 그대로 올려놓은 작품이야. 등장인물은 둘뿐이야. 딜러와 손님. 한 사람은 ‘원하는 게 있잖아’라고 다가오고, 한 사람은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라고 버티지. 근데 이 둘이 주고받는 건 물건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건드리는 말이야.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정하지 않은 채로, ‘원함’ 자체를 무기로 쓰는 거지.
오늘 내가 담고싶은 장면은 ‘칠흑’이야. 화면 대부분을 검은색으로 두고, 오직 가로등 하나만 살아 있게. 그 좁은 빛 원 안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밀고 당기면, 표정은 사라지고 긴장감만 남아. 이 작품은 그 상태가 가장 정확하다고 봐. 말이 길어질수록 더 뚜렷해지는 건, 결국 ‘무엇을 원하느냐’보다 ‘누가 먼저 흔들리느냐’니까.
[시놉시스 | 원하는 게 있냐고 묻는 밤, 끝내 대답하지 못하는 밤]
깊은 밤, 도시의 후미진 공간에서 딜러가 손님을 붙잡는다. 딜러는 손님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말하며 거래를 제안하지만, 그 ‘물건’이 무엇인지는 끝내 명시하지 않는다.
손님은 경계하고 거리를 두려 하지만, 대화를 끊고 떠나지도 못한다. 두 사람은 거래를 빌미로 상대의 약점을 찌르고, 서로를 규정하려 들며, 폭력 직전까지 밀어붙이는 말싸움을 이어간다. 이 대화는 거래를 가장한 심리전이고, 동시에 ‘원함’을 둘러싼 힘의 게임이다.
오늘 내가 찍고 싶은 컷은 중반의 투 샷(Two Shot)이야. 한 개의 가로등 아래, 두 사람이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마주 서 있는 장면. 둘 다 빛 원의 가장자리에 걸쳐 있고, 발끝은 어둠으로 빠져 있어. 대화는 진행되는데, 몸은 한 발도 안 움직이는 상태. 이 ‘정지된 대치’를 한 컷으로 오래 버티면, 보는 사람은 먼저 숨을 고르게 될 거야. 그리고 그 숨이 멎는 순간, 대사의 의미가 더 단단해지지.
2. Scene Reading: 말이 길수록, 진짜는 더 숨는다
이 작품에서의 대사는 ‘설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설명을 피하는 방식에 가까워. 딜러는 계속 제안을 하지만,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말하지 않아. 이 작품이 노리는 긴장은 여기서 나오는 거지. 보는 이들도 따라가다 보면, ‘거래 대상’이 아니라 ‘거래 상황’에 갇히게 되거든.
그래서 중요한 건 거리감이야. 딜러는 거리 자체를 좁히는 사람이고, 손님은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지. 이 작품의 힘은 한 발을 더 들어오느냐, 아니면 그대로 버티느냐에서 생겨. 조명도 그걸 따라가야 하지. 빛 원 안으로 한 발 들어오면 얼굴이 드러나고, 밖으로 밀려나면 실루엣만 남아. 그 구분이 대사보다 먼저 심리를 보여주게 만드는 거지.

3. Director’s Cut: 빛을 줄이면, 태도만 남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보여주는 극’이 아니라 ‘들키는 극’이 맞는 것 같아. 그래서 연출은 최대한 단순하게 하고싶어. 무엇을 더하기보다, 불필요한 걸 줄여서 두 사람의 대치가 더 정확히 보이게 만드는 게 핵심이야.
🎥 Camera Work: 고정 숏으로 버티고, 거리 변화만 기록한다
- 기본은 고정(Static): 카메라는 쉽게 움직이지 않을 거야. 두 사람이 말로 서로를 밀어붙이는 동안, 카메라는 관찰자처럼 한 자리를 지키는 거지. 시선을 흔들면 대치가 약해지니까.
- 움직임이 필요할 때: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한 번, 아주 짧게 트랙 인을 쓸 거야. 딜러가 한 발 들어오거나, 손님이 한 발 물러날 때처럼 ‘거리’가 바뀌는 순간에만. 관객이 ‘상황이 변했다’를 몸으로 느끼게 하려는 목적이야.
- 초점의 선택: 투 샷은 깊게 가져가되, 결정적인 문장에서는 상대의 얼굴이 아닌 손이나 목선 같은 디테일로 잠깐 빗겨갈 거야. 이 작품은 표정보다 습관적인 자세에서 더 많은 게 새어 나오니까.
💡 Lighting: 단일 광원, 빛의 원, 그리고 가장자리
- 주광원은 하나: 가로등 느낌의 단일 광원을 위에서 떨어뜨려. 색온도는 따뜻한 노랑이 아니라, 약간 탁한 백열 느낌으로. ‘거리의 현실감’을 주는 톤으로 갈 거야.
- 빛의 경계가 중요해: 빛의 원이 바닥에 또렷하게 찍히게 하고, 그 원의 가장자리는 급하게 어두워지게 할 거야. 딜러가 상대를 빛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느낌, 손님이 어둠 쪽으로 빠지려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생겨.
- 림 라이트는 최소: 뒤에서 얇게 한 번만 줄 거야. 코트의 어깨선이나 머리 윤곽만 겨우 떠오르게. 얼굴을 살려주기 위한 조명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사람이 서 있다’는 사실만 남기는 조명이야.
🔊 Sound: 음악 대신 ‘도시의 기계음’을 깔아준다
- 배경음은 현실적인 선에서: 가로등의 약한 전기 소리, 멀리서 지나가는 차 소리, 어딘가 닫히는 철문 소리 같은 ‘심야의 도시음’을 깔아주면 좋을것 같아. 너무 과장하지 않고 딱 ‘있을 법한 정도’로만.
- 말과 말 사이: 침묵이 오면 그때만 도시음이 조금 도드라지게 할 거야.
- 마찰음: 발소리, 코트 천이 스치는 소리, 숨이 새는 소리를 가깝게 잡아줄 거야. 이 작품은 감정이 커지기보다, ‘견디는 긴장’이 쌓여야 힘이 생기니까.

4. Editor’s Note: 거래가 끝나도, 욕망은 남는다
도대체 ‘무엇을 거래했는지’ 말해주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게 하더라. 우리 삶에서도 욕망은 대개 이름을 숨기잖아. 명확히 말하는 순간 책임이 생기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회하고, 떠보고, 상대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지.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그 우회를 끝까지 밀어붙여서, 결국 ‘말’ 자체가 거래가 되는 순간을 보여줘. 나는 이 작품이 고독을 말하는 방식이 좋더라. 눈물로 말하지 않고, 끈질기게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말하거든.
[Scene Keyword]
Bernard-Marie Koltès, In the Solitude of Cotton Fields, Single Source Lighting, Film Noir, High Contrast, Urban Night, Dealer and Client, Distance, Minimalism, Silence
작품 : Bernard-Marie Koltès, In the Solitude of Cotton Fields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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