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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49] 샘 셰퍼드 『트루 웨스트』 : 엔트로피의 미장센과 혼합 광원의 충돌

by 필름회색소음 2026. 1. 11.

1. 프롤로그: 내 안의 야수는 언제 튀어나오는가

영상편집을 할 땐 항상 밤샘작업의 연속이었어. 그렇게 밤을 새 가며 편집을 하다 보면, 유지하던 컨트롤이 느슨해지는 순간이 꼭 오곤 해. 아무리 집중을 해도 수정은 계속되고, 작업도 길어지고, 그러는 동안 커피는 차갑게 식어 있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몸은 점점 한계를 느끼더라. 다 엎어버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면 꾹 참고 견뎌내야 하지. 영상편집만 그러할까? 우린 보통 일상에서 꼭 밤샘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순간을 살고 있잖아.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마다 탈출하고 싶은 충동이, 참아냈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 거지.

 

샘 셰퍼드의 『트루 웨스트』는 그 억눌린 충동이 ‘형제’라는 형태로 눈앞에 나타난 작품인 것 같아. 동생 오스틴은 글을 쓰는 사람이고, 형 는 사막을 떠돌던 사람이지. 두 사람은 같은 피를 가졌는데도, 집 안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써.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고, 결국 서로를 닮아가기 시작해. 집은 그대로인데, 집 안의 질서가 빠르게 망가지지.

 

오늘 내가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은 건 ‘정돈이 무너지는 과정’이야. 처음엔 비교적 멀쩡했던 부엌이 토스트기, 타자기, 맥주 캔, 찢어진 원고지로 가득 차는 그 변화. 그리고 그 혼란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게 혼합 광원이라고 생각해. 실내의 노란 텅스텐과 창밖의 푸른 달빛이 서로 섞이지 못하고 얼굴 한쪽씩을 갈라놓는 순간, 형제의 경계도 같이 갈라져 보이거든.

[시놉시스 | 형제의 자리가 뒤집히는 밤]
캘리포니아 교외. 어머니가 비운 집에서 시나리오 작가 오스틴이 집필을 하고 있다. 그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형 가 들이닥친다. 는 동생의 작업을 방해하고, 우연히 만난 제작자에게 자신이 가진 ‘서부 이야기’를 팔아치우려 한다.

시간이 흐르며 형제의 자리가 조금씩 뒤집힌다. 오스틴은 술과 분노로 흔들리고, 는 타자기 앞에서 말문이 막히며 초조해진다. 부엌은 점점 어질러지고, 말은 거칠어지고, 결국 둘은 서로를 마주한 채 ‘누가 진짜인지’ 끝까지 확인하려 든다.

오늘 내가 찍고 싶은 컷은 후반부의 마스터 샷이야. 부엌은 완전히 망가져 있고, 바닥엔 찌그러진 맥주 캔과 타버린 식빵 조각이 널려 있어. 두 형제는 땀에 젖은 상태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지만, 가까워질수록 더 위험해 보이는 거리. 그때 얼굴 위에 텅스텐과 문라이트가 반반 걸리게 만들어서, 둘의 표정이 ‘한 사람처럼’ 보이면서도 ‘서로를 잡아먹을 것처럼’ 보이게 찍고 싶어.


2. Scene Reading: 진짜 ‘서부’는 어디인가

제목이 ‘트루 웨스트’인 이유는 결국 ‘서부’가 지명이 아니라 상태이기 때문 같아. 오스틴에게 서부는 ‘소재’였고, 에게 서부는 ‘버티는 방식’이었지.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오스틴의 안에서도 같은 부분이 튀어나오고, 의 안에서도 오스틴 같은 부분이 드러나. 둘이 싸우는 건 ‘형제’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두 방식이 충돌하기 때문처럼 보이기도 해.

 

그래서 이 작품의 미장센은 문명(부엌)이 야생(사막)에게 잠식당하는 과정이야. 타자기 소리는 점점 의미를 잃고, 식빵은 음식이 아니라 사건의 흔적이 돼. 무서운 건, 집 밖에서 누가 침입한 게 아니라 집 안에서 스스로 무너진다는 점이지. ‘엔트로피’라는 말이 잘 맞는 이유도 딱 그거야. 가만히 두면 정돈은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


야생의 타자기 : 어지러운 주방에서 낡은 타자기 자판을 거칠게 내리치는 손과 키 사이에 낀 탄 토스트 부스러기가 달빛에 드러나는 거친 매크로 장면.


3. Director’s Cut: 땀과 열기, 그리고 색온도의 충돌

연출의 핵심은 불편한 현실감이야. 보기 좋게 무너지는 게 아니라, 냄새와 온도가 느껴질 정도로 지저분하게 무너져야 해. 그게 이 작품의 힘이니까.

🎥 Camera Work: 마스터는 고정, 싸움은 흔들림

- 마스터 샷의 책임: 부엌 전체를 보여주는 마스터 샷은 되도록 고정(Static)으로 갈 거야. 공간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동선이 얼마나 꼬였는지, 관객이 한눈에 확인하게 만들고 싶어.

- 격돌 구간의 핸드헬드: 대신 몸싸움이나 위협이 시작되면 핸드헬드를 쓸 거야. 흔들림 자체가 감정의 과장이 아니라, 서로의 호흡이 부딪히는 거리를 그대로 담는 방식이 되게.

- 낮은 시선: 바닥의 토스트기, 흩어진 식빵, 캔을 먼저 찍고 인물을 올려다보는 로우 앵글을 섞을 거야. 사물이 인물을 설명하는 장면이니까. ‘이 집이 왜 이렇게 됐는지’를 대사보다 먼저 보여주게.

💡 Lighting: 텅스텐(Warm) vs 문라이트(Cool), 섞지 말고 부딪히게

- 실내 텅스텐: 부엌의 펜던트 조명과 스탠드는 텅스텐(대략 3200K)으로 유지할 거야. 따뜻하지만 숨이 막히는 느낌을 주는 노란빛. ‘문명 쪽 빛’으로 고정하는 거야.

- 창밖 문라이트: 창문 쪽은 차가운 푸른빛(5600K 이상)을 강하게 넣을 거야. 실내와 자연스럽게 섞이게 하지 말고, 경계가 남도록 밀어 넣어. 얼굴에 걸리면 한쪽은 노랗고 한쪽은 푸르게 갈라지게.

- 피부톤의 불편함: 이 혼합 광원은 예쁘지 않아야 해. 보기 좋은 색이 아니라, ‘어딘가 어긋난 얼굴’이 되게 만들어야 해. 형제의 자리바꿈이 눈에 보이게 만드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니까.

🔊 Sound: 생활 소음이 점점 공격으로 바뀌는 과정

- 코요테 소리: 처음엔 멀리, 후반엔 가까이. 볼륨만 키우는 게 아니라 위치감을 바꿔서, 창문 쪽에서 실제로 들리는 것처럼 만들면 좋을 것 같아. 야생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나게.

- 타격음의 건조함: 토스트기 떨어지는 소리, 캔 밟는 소리, 타자기 두들기는 소리를 드라이하게 잡아볼 거야. 잔향을 줄여서 소리가 ‘살에 붙는’ 느낌이 나게 하면, 관객이 더 피곤해져. 그 피곤함이 이 작품의 온도야.


붕괴된 부엌 : 1980년대 미국 주방의 폐허 같은 공간에서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와 골프채를 든 또 다른 남자가 주황빛 실내등과 차가운 달빛에 얼굴이 갈라진 채 대치하는 혼란스러운 장면.


4. Editor’s Note: ‘형’이 싫은 게 아니라, ‘내 안의 형’이 싫은 거다

오스틴를 밀어내는 건, 단순히 형이 거칠어서가 아닌 것 같아. 를 보면, 자기가 애써 눌러둔 부분이 자꾸 들썩이거든. 반대로 오스틴을 보며, 자기가 못 들어간 세계를 찌르는 방식으로 확인하려 하고. 둘은 서로를 미워하는데, 결국 서로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해.

 

트루 웨스트』는 화해를 주기보단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정돈된 나와 거친 나, 둘 중 하나만으로는 오래 못 간다고. 둘 중 누구도 완전히 옳지 않아. 하지만 둘 다 진짜지.

 

[Scene Keyword]

Sam Shepard, True West, Mixed Lighting, Tungsten and Moonlight, Entropy, Kitchen Chaos, Sibling Rivalry, Handheld, Color Temperature, American Drama

 

 

 

작품 : Sam Shepard, True West (희곡)
※ 본 글은 장면 해석·비평 목적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며, 원문 인용은 최소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