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내 안의 야수는 언제 튀어나오는가
영상편집을 할 땐 항상 밤샘작업의 연속이었어. 그렇게 밤을 새 가며 편집을 하다 보면, 유지하던 컨트롤이 느슨해지는 순간이 꼭 오곤 해. 아무리 집중을 해도 수정은 계속되고, 작업도 길어지고, 그러는 동안 커피는 차갑게 식어 있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몸은 점점 한계를 느끼더라. 다 엎어버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면 꾹 참고 견뎌내야 하지. 영상편집만 그러할까? 우린 보통 일상에서 꼭 밤샘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순간을 살고 있잖아.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마다 탈출하고 싶은 충동이, 참아냈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 거지.
샘 셰퍼드의 『트루 웨스트』는 그 억눌린 충동이 ‘형제’라는 형태로 눈앞에 나타난 작품인 것 같아. 동생 오스틴은 글을 쓰는 사람이고, 형 리는 사막을 떠돌던 사람이지. 두 사람은 같은 피를 가졌는데도, 집 안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써.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고, 결국 서로를 닮아가기 시작해. 집은 그대로인데, 집 안의 질서가 빠르게 망가지지.
오늘 내가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은 건 ‘정돈이 무너지는 과정’이야. 처음엔 비교적 멀쩡했던 부엌이 토스트기, 타자기, 맥주 캔, 찢어진 원고지로 가득 차는 그 변화. 그리고 그 혼란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게 혼합 광원이라고 생각해. 실내의 노란 텅스텐과 창밖의 푸른 달빛이 서로 섞이지 못하고 얼굴 한쪽씩을 갈라놓는 순간, 형제의 경계도 같이 갈라져 보이거든.
[시놉시스 | 형제의 자리가 뒤집히는 밤]
캘리포니아 교외. 어머니가 비운 집에서 시나리오 작가 오스틴이 집필을 하고 있다. 그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형 리가 들이닥친다. 리는 동생의 작업을 방해하고, 우연히 만난 제작자에게 자신이 가진 ‘서부 이야기’를 팔아치우려 한다.
시간이 흐르며 형제의 자리가 조금씩 뒤집힌다. 오스틴은 술과 분노로 흔들리고, 리는 타자기 앞에서 말문이 막히며 초조해진다. 부엌은 점점 어질러지고, 말은 거칠어지고, 결국 둘은 서로를 마주한 채 ‘누가 진짜인지’ 끝까지 확인하려 든다.
오늘 내가 찍고 싶은 컷은 후반부의 마스터 샷이야. 부엌은 완전히 망가져 있고, 바닥엔 찌그러진 맥주 캔과 타버린 식빵 조각이 널려 있어. 두 형제는 땀에 젖은 상태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지만, 가까워질수록 더 위험해 보이는 거리. 그때 얼굴 위에 텅스텐과 문라이트가 반반 걸리게 만들어서, 둘의 표정이 ‘한 사람처럼’ 보이면서도 ‘서로를 잡아먹을 것처럼’ 보이게 찍고 싶어.
2. Scene Reading: 진짜 ‘서부’는 어디인가
제목이 ‘트루 웨스트’인 이유는 결국 ‘서부’가 지명이 아니라 상태이기 때문 같아. 오스틴에게 서부는 ‘소재’였고, 리에게 서부는 ‘버티는 방식’이었지.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오스틴의 안에서도 리 같은 부분이 튀어나오고, 리의 안에서도 오스틴 같은 부분이 드러나. 둘이 싸우는 건 ‘형제’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두 방식이 충돌하기 때문처럼 보이기도 해.
그래서 이 작품의 미장센은 문명(부엌)이 야생(사막)에게 잠식당하는 과정이야. 타자기 소리는 점점 의미를 잃고, 식빵은 음식이 아니라 사건의 흔적이 돼. 무서운 건, 집 밖에서 누가 침입한 게 아니라 집 안에서 스스로 무너진다는 점이지. ‘엔트로피’라는 말이 잘 맞는 이유도 딱 그거야. 가만히 두면 정돈은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

3. Director’s Cut: 땀과 열기, 그리고 색온도의 충돌
연출의 핵심은 불편한 현실감이야. 보기 좋게 무너지는 게 아니라, 냄새와 온도가 느껴질 정도로 지저분하게 무너져야 해. 그게 이 작품의 힘이니까.
🎥 Camera Work: 마스터는 고정, 싸움은 흔들림
- 마스터 샷의 책임: 부엌 전체를 보여주는 마스터 샷은 되도록 고정(Static)으로 갈 거야. 공간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동선이 얼마나 꼬였는지, 관객이 한눈에 확인하게 만들고 싶어.
- 격돌 구간의 핸드헬드: 대신 몸싸움이나 위협이 시작되면 핸드헬드를 쓸 거야. 흔들림 자체가 감정의 과장이 아니라, 서로의 호흡이 부딪히는 거리를 그대로 담는 방식이 되게.
- 낮은 시선: 바닥의 토스트기, 흩어진 식빵, 캔을 먼저 찍고 인물을 올려다보는 로우 앵글을 섞을 거야. 사물이 인물을 설명하는 장면이니까. ‘이 집이 왜 이렇게 됐는지’를 대사보다 먼저 보여주게.
💡 Lighting: 텅스텐(Warm) vs 문라이트(Cool), 섞지 말고 부딪히게
- 실내 텅스텐: 부엌의 펜던트 조명과 스탠드는 텅스텐(대략 3200K)으로 유지할 거야. 따뜻하지만 숨이 막히는 느낌을 주는 노란빛. ‘문명 쪽 빛’으로 고정하는 거야.
- 창밖 문라이트: 창문 쪽은 차가운 푸른빛(5600K 이상)을 강하게 넣을 거야. 실내와 자연스럽게 섞이게 하지 말고, 경계가 남도록 밀어 넣어. 얼굴에 걸리면 한쪽은 노랗고 한쪽은 푸르게 갈라지게.
- 피부톤의 불편함: 이 혼합 광원은 예쁘지 않아야 해. 보기 좋은 색이 아니라, ‘어딘가 어긋난 얼굴’이 되게 만들어야 해. 형제의 자리바꿈이 눈에 보이게 만드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니까.
🔊 Sound: 생활 소음이 점점 공격으로 바뀌는 과정
- 코요테 소리: 처음엔 멀리, 후반엔 가까이. 볼륨만 키우는 게 아니라 위치감을 바꿔서, 창문 쪽에서 실제로 들리는 것처럼 만들면 좋을 것 같아. 야생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나게.
- 타격음의 건조함: 토스트기 떨어지는 소리, 캔 밟는 소리, 타자기 두들기는 소리를 드라이하게 잡아볼 거야. 잔향을 줄여서 소리가 ‘살에 붙는’ 느낌이 나게 하면, 관객이 더 피곤해져. 그 피곤함이 이 작품의 온도야.

4. Editor’s Note: ‘형’이 싫은 게 아니라, ‘내 안의 형’이 싫은 거다
오스틴이 리를 밀어내는 건, 단순히 형이 거칠어서가 아닌 것 같아. 리를 보면, 자기가 애써 눌러둔 부분이 자꾸 들썩이거든. 반대로 리는 오스틴을 보며, 자기가 못 들어간 세계를 찌르는 방식으로 확인하려 하고. 둘은 서로를 미워하는데, 결국 서로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해.
『트루 웨스트』는 화해를 주기보단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정돈된 나와 거친 나, 둘 중 하나만으로는 오래 못 간다고. 둘 중 누구도 완전히 옳지 않아. 하지만 둘 다 진짜지.
[Scene Keyword]
Sam Shepard, True West, Mixed Lighting, Tungsten and Moonlight, Entropy, Kitchen Chaos, Sibling Rivalry, Handheld, Color Temperature, American Drama
작품 : Sam Shepard, True West (희곡)
※ 본 글은 장면 해석·비평 목적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며, 원문 인용은 최소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