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코미디가 뉴스보다 더 또렷할 때
방송을 보다보면 NG모음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잖아. 난 그거 보는게 그렇게 재미 있더라고. 나 역시 편집을 하다 보면 촬영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온 NG장면들 보면 나만 보기 아까워서 항상 영상 끝에 모아놓곤 했었어. 보통 대사나 동작이 틀렸는데, 그 순간 사람의 반사신경이 그대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지. 누가 책임을 피하려고 먼저 말을 던지고, 누군 얼버무리며 웃고, 누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그 몇 초가, 잘 다듬어진 ‘OK’보다 훨씬 많은 걸 말해줄 때가 있어.
다리오 포의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은, 권력의 말실수와 변명, 말 바꾸기가 한 장면씩 쌓여서 스스로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동극이야. 배경은 경찰서. 조사받던 사람이 창문 밖으로 떨어져 사망했고, 관계자들은 ‘우연’과 ‘자발’을 반복하면서 설명을 바꿔. 그런데 ‘광인(Maniac)’이 판사로 위장해 들어오면서 상황이 뒤집히지. 웃긴 건, 이 광인이 진실을 ‘설교’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그들이 늘 하던 방식 그대로—말로 덮고 말로 구기게—만들어버린다는 거야.
오늘 내가 카메라에 담고 싶은 건 권위의 얼굴이 무너지는 순간의 ‘형태’야. 초광각 렌즈를 가까이 들이대면, 얼굴은 과장되고 공간은 휘어져. 그 왜곡이 ‘웃기게’만 끝나면 안 되고, 권위가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드러내야 해. 형광등 아래서 번들거리는 이마와, 종이 더미를 움켜쥔 손끝, 그리고 창문이라는 구멍. 이 조합이 이 작품의 온도라고 생각해.
[시놉시스 | ‘사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질문’만 던지는 광인]
밀라노의 경찰서. 말솜씨가 좋고 변장에 능한 광인이 잡혀온다. 그는 신분을 바꿔가며 경찰들을 시험하고, ‘무정부주의자 추락 사건’을 조사하러 온 판사 행세로 수사실에 들어간다.
경찰들은 자신들의 설명이 일관되게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꾸미려 하지만, 광인은 질문을 조금만 비틀어도 그들의 말이 서로 충돌한다는 걸 드러낸다. 조서와 증언은 자꾸 수정되고, 책임은 떠밀리고, 결국 경찰 조직은 스스로 만든 이야기 속에서 허둥대며 모순을 노출한다. 마지막에 광인은 ‘창문’이라는 핵심 오브제를 앞에 두고 묻는다. ‘그럼, 이건 우연이었나? 아니면 누군가가 만든 결말이었나?’
오늘 내가 찍고 싶은 컷은 광인이 책상 위에 올라가 지휘자처럼 사건을 ‘정리’해보이는데, 아래의 경찰들이 그 말에 끌려가며 스스로를 더 꼬이게 만드는 장면이야. 로우 앵글로 올려다보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로우 앵글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움을 들키게 하는 로우 앵글로. 공간은 넓어 보이는데, 빠져나갈 구멍은 딱 하나—그 창문뿐이라는 느낌으로 가고 싶어.
2. Scene Reading: 창문은 ‘풍경’이 아니라 ‘진술’이다
이 작품에서 창문은 배경이 아니야. 경찰들은 ‘창문이 닫혀 있었다’고 했다가, ‘원래 열려 있었다’고 말이 바뀌지. 그 순간 창문은 사건의 출구가 아니라, 말이 무너지는 지점이 돼.
그리고 광인은 ‘정의의 사도’라기보다 트릭스터에 가까워. 옷을 갈아입고 역할을 바꾸며, 상대가 스스로 자기 말을 믿게 만들고, 그 믿음이 가장 허술한 지점에서 툭 건드리지. 재밌는 건, 이 방식이 폭로보다 더 아프다는 거야. 폭로는 반박할 수 있지만, 자기 입으로 모순을 말해버리는 순간은 되돌리기 어렵거든.

3. Director’s Cut: 보기 불편한 각도로, 말의 허술함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고급스럽게 찍으면 손해 봐. 오히려 정리되지 않은 동선과 과장된 몸짓이 살아있어야 하고, 그 와중에 카메라는 ‘예쁘게’ 수습하지 않는 쪽이 맞아. 그렇다고 난장판을 그냥 방치하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무너지는지가 보이게 잡아야 해.
🎥 Camera Work: 14–18mm의 근접, 그리고 기울어진 수평
- 근접 광각: 14–18mm대 광각을 쓰되, ‘풍경’이 아니라 ‘얼굴’에 붙여. 경찰이 확신하는 척 말할수록, 화면은 그 확신을 의심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코앞에서 찍으면 얼굴이 커지고 배경이 과장돼. 이 왜곡이 권위를 세우지 않고 권위의 허세를 들키게 만들어.
- 더치 앵글: 사건 설명이 바뀌는 타이밍마다 수평을 살짝 틀어. 관객이 ‘지금 뭔가 어긋났다’를 눈으로 먼저 느끼게. 과하면 장난이 되니까, 5–10도 정도로 충분해.
- 창문 프레이밍: 창문은 가능한 한 프레임 안에 남겨. 대화가 바뀔 때마다, 창문이 배경에서 ‘증거’로 바뀌는 느낌이 들어야 하거든.
💡 Lighting: 창백한 형광등과 ‘날아간’ 창문 밖
- 형광등 톤: 경찰서 실내는 천장 형광등을 주광원으로 두고, 살짝 녹색기가 남는 차가움을 유지해. 피부가 건강해 보이면 이 장면의 기분이 달아나. 땀은 ‘미화’가 아니라 ‘증거’처럼 보여야 해.
- 창문 밖 과노출: 창문 밖은 정보를 일부러 날려. 바깥세상이 ‘안전한 현실’로 보이면 안 돼. 그 빛이 너무 하얗게 터져서, 밖이 진실인지, 낭떠러지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태로 두는 거야.
- 하레이션은 최소: 하이라이트가 번지게 만들되, 뿌옇게 감성으로 가면 안 돼. 이 작품의 빛은 낭만이 아니라, 노출이야.
🔊 Sound: 겹치는 변명과, 종이와 의자의 소리
- 대사 겹침: 서로 말 끊고 덮는 소리를 정리하지 말고 남겨. ‘이 사람들은 합의된 진실이 아니라, 순간을 넘기려는 말만 한다’가 소리로 느껴져야 해.
- 슬랩스틱의 현실감: 넘어지고 부딪히는 소리는 만화처럼 과장하기보다는, 실제 사무실에서 나는 둔탁함으로 잡아. 파일철, 의자 바퀴, 서류 뭉치가 떨어지는 소리. 이 현실적인 타격이 더 웃기고 더 서늘해.
- 정적의 타이밍: 광인이 창문을 가리키거나, 핵심 질문을 던지는 순간엔 주변 소음을 잠깐 줄여. 관객이 ‘지금 이게 핵심이다’를 귀로 잡게 만들면, 웃음이 한 번 멈춘다.

4. Editor’s Note: 웃음은 가끔, 제일 정확한 질문이 된다
이 작품을 보다 보면 한참 웃다가도, 어느 순간 웃음이 씁쓸해질 거야. ‘지금 저 사람들이 하는 말 바꾸기’가 그냥 연극적 장치가 아니라, 현실에서 반복되는 방식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 오거든. 그래서 이 코미디는 끝까지 ‘가볍게’ 끝나지만은 않아. 가벼운 몸짓이 오히려 무거운 질문을 들고 오지.
다리오 포는 이 작품에서 권력을 ‘대단하게’ 그리지 않았어. 권력은 멋있어서 무서운 게 아니라, 우기기 때문에 무섭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해. 그래서 나는 이 씬을 ‘정의의 승리’로 마무리하고 싶진 않아. 대신 ‘창문 앞에 남는 것’을 남기고 싶어. 말은 계속 바뀌는데, 창문은 그대로 열려 있는 그 느낌. 그게 오늘 이 작품을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이유라고 믿어.
[Scene Keyword]
Dario Fo, Accidental Death of an Anarchist, Satire, Farce, Wide Angle Lens, Distortion, Fluorescent Lighting, The Maniac, Window Motif, Political Comedy
작품 : Dario Fo, Accidental Death of an Anarchist (희곡)
※ 본 글은 장면 해석·비평 목적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며, 작품 속 사건을 미화하거나 위해 행위를 조장하지 않습니다.
※ 본 글은 연극 작품의 연출·미장센 분석으로, 현실의 폭력·불법 행위를 조장하거나 구체적 방법을 안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