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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밀러2

[Scene #53] 아서 밀러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 필름 느와르(Film Noir)의 짙은 그림자와 끊어진 다리 1. 프롤로그: 다리 위에서는 풍경, 다리 아래에서는 숨소리약 10여 년 전, 내가 일하던 곳은 신사동이었어. 일을 마치고 모임이 있는 옥수동까지 자주 걸어갔지. 지하철로는 두 정거장밖에 안 되는데, 걸으면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였어. 이상하게도 그 길이 싫지 않았어. 하루가 끝났다는 걸 ‘발바닥’으로 확인하는 느낌이랄까. 옥수동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관문이 늘 한강 다리였는데, 아마 동호대교였던 걸로 기억해. 그 구간이 특히 좋더라.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다리 아래로는 한강이 조용하게 흐르고, 저 너머로는 서울의 불빛이 넓게 펼쳐지잖아. 젊었던 나는 그걸 그냥 낭만이라고 불렀어. 걷고, 숨 쉬고, 잠깐 멈춰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 있었거든. 그러다 문득, 내가 살던 마산의 .. 2026. 1. 13.
[Scene #09] 아서 밀러 『시련』 : 집단 광기의 폐쇄성을 강조하는 프레임(Framing) 기법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의 긴장감 1. 프롤로그: 속삭임이 고함이 될 때까지가끔 SNS 댓글들을 보다 보면, 소름 돋는 순간들이 있지 않아? 처음엔 누군가가 '그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의혹 제기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의혹은 수천 개의 확신으로 달려들잖아. 그 확신들은 팩트를 찾기보다 대상을 찾고, 진실을 따지기보다 분노를 완성하지... 그리고 그 흐름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그렇게 한 번 시작된 의혹은 팩트로도 묻히지 않는다는 거야. 한 번 '저 사람이 악마다'가 시작되면, 그다음부터는 '악마가 아닌 증거'조차도 악마의 증거처럼 취급 돼버리니까. 아서 밀러의 『시련』은 17세기 살렘의 마녀재판을 다루지만, 나는 이 작품이 오히려 가장 현대적인 공포극이라고 느껴지더라. '마녀가 실제로 있냐 없냐'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 2025.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