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우리의 지금은 어떤 무대인가
이 희곡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ㅎㅎ 읽다 잠들었어. 내용은 없는 것 같고~ 말은 빙빙 돌고~ 대사는 계속 반복되고... '부조리극'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지적 허영심만 건드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마흔 줄에 들어서서 다시 읽어보니까, 이게 너무 익숙한 거야.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곳을 지나 출근을 하고, 같은 파티션 안에 앉아서, 어제랑 똑같은 일을 처리하다가 퇴근을 기다리는 삶. 오늘도 별일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일은 다르겠지'라고 말하는 습관?
디디와 고고가 주고받는 맥 빠지는 대화 있잖아. “올까?” “내일일까?” 같은, 결론이 없는 말들... 그게 마치~ 탕비실에서 동료랑 나누는 신세 한탄이랑 뭐가 그렇게 다를까 싶더라. 우리도 각자의 ‘고도’를 기다리면서 오늘을 때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거지. 그게 승진이든, 이직이든, 로또든, 은퇴든, 혹은 '언젠가 괜찮아질 거야' 같은 막연한 약속이든 말이야.
[시놉시스 | 기다림이 삶이 되는 두 사람]
디디와 고고는 ‘고도’라는 어떤 약속을 기다리는데, 그 약속은 계속 내일로 밀려. 그들은 떠나자고 말하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시간을 견디려고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해. 이 작품은 사건이 아니라 시간이 사람을 어떻게 깎아먹는지를 보여줘. 오늘 장면은 그 깎임을 그대로 찍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다림’ 자체야.
예전엔 이 작품이 난해한 예술 영화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너무 사실적인 직장인 다큐멘터리처럼 보여. 그래서 오늘 내가 포착할 장면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야. 기다림 그 자체의 질감. 지루함의 무게. 그걸 롱테이크처럼 찍어보면 어떨까 해.
2. Scene Reading: 텅 빈 무대, 꽉 찬 공허
이 희곡의 무대는 단출해. 시골길, 나무 한 그루, 저녁. 거의 이게 다야. 배경이 비어 있으니까, 이야기가 앞으로 달려가질 않아. 대신 시간이 그대로 남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두 사람은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려.
그들은 기다림을 견디려고 계속 뭔가를 해. 신발을 만지작거리고, 모자를 뒤적이고, 의미 없는 논쟁을 반복해. 가끔은 아주 위험한 상상까지 스쳐가지만, 결국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하지. 여기서 내가 무섭다고 느끼는 건 '고도가 안 온다'는 결말보다, '내일도 똑같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과정이야.
이 작품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시간이 사람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보여주는 이야기 같아.

3. Director’s Cut: 회색빛 정지 화면의 미학
만약 내가 이 장면을 찍는다면, 관객을 '즐겁게' 만들 생각이 들진 않을 것 같아. 오히려 관객이 몸으로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 작정으로 덤비고싶어! 화려한 기교는 다 빼고, 미니멀리즘으로 밀어붙이는 거지.
🎥 Camera Work: Static Long Take + Extreme Long Shot
이번 촬영은 카메라 무빙은 없이 고정으로 두고싶어. 그것도 철저하게 고정된 롱테이크(Static Long Take)로 말이야. 앵글은 아주 멀리서 보는 익스트림 롱샷(Extreme Long Shot). 광활한 벌판 한가운데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밑에 점처럼 작은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거지. 컷을 나누지 않고 아~주 아주 오래 보여줘서, 관객이 속으로 '뭐지? 언제 끝나는 거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거야. 그 불편함이 이 장면의 핵심이니까!
💡 Lighting: Monochrome/Gray Tone + Flat Lighting
색은... 뺄거야! 거의 흑백에 가까운 회색 톤(Gray Tone). 난, 회색소음이니까? 농담이고. 날씨는 흐리고, 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게. 그림자조차 희미한 플랫 조명(Flat Lighting)을 쓰는 거지. 시간의 흐름이 잘 안 느껴지는 빛처럼. 즉,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회색 오후'의 느낌?
🔊 Sound: 음악은... 글쎄?
여기서 음악은 굳이 쓰고 싶지는 않아. 대사가 멈출 때 찾아오는 정적. 그리고 그 정적 사이로 깔리는 바람 소리. 가끔 들리는 건 부츠를 벗기 힘들어하는 끙끙거림 같은 작은 생활 소리 정도? 이 건조한 소리들이 기다림의 건조함을 직접 보여줄 거야.

4. Editor’s Note: 너의 고도는 뭐야?
과연 고도는 오는 것일까? 그 대답 대신 '오늘은 어렵고 내일은 온다' 같은 소식은 반복되지. 두 사람은 “그럼 가자”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기다림 자체가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 갑자기... 현실로 돌아와 내일 아침 울릴 알람이 떠오르더라. 뭐가 오든 안 오든, 내일은 오잖아? 우리는 또 사무실이라는 무대에 올라가서, 모니터라는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고, 시간을 견딜 거야... 하핫!
어쩌면 진짜 비극은 고도가 오지 않는 게 아니라, 우리가 기다림을 멈출 용기를 잃어버리는 걸지도 몰라. 근데 동시에… 그 용기를 꺼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아. 그래서 이 작품은 결국 잔인한 게 아니라 정확한 거겠지.
이번 장면의 핵심 쇼트 3
- 익스트림 롱숏 + 고정 카메라(Static Long Take): 광활한 풍경 속 점 같은 인물로 무력감과 '시간의 압박'을 체감시키기
- 회색 톤 + 플랫 조명(Gray Tone / Flat Lighting): 그림자와 시간감을 지워서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느낌 만들기
- 정적 + 바람 소리(Wind Noise): 감정 유도를 끊고, 공허와 기다림의 건조함을 청각적으로 설계하기
[Scene Keyword]
Static Long Take, Extreme Long Shot, Monochrome/Gray Tone, Flat Lighting, Wind Noise, Minimalism
작품 : Samuel Beckett, Waiting for Godot (희곡)
※ 본 글은 장면 해석/비평 목적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며, 원문 인용은 최소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