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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연출 노트

[Scene #06] 막심 고리키 『밑바닥에서』: 지하 공간의 거친 질감(Texture)을 살리는 로우 키(Low Key) 조명 활용법

by 필름회색소음 2025. 12. 20.

1. 프롤로그: 우리는 어디쯤 내려와 있는가

내가 한참 직장이 구해지지 않아서 힘든 시절을 보내던 날에는, 일부러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모니터링하곤 했거든? 날이 갈수록 피곤에 찌든 눈, 푸석한 피부, 영혼 없이 흔들리는 몸. 하...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올라오기도 하더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닥일까, 아니면 아직 더 내려갈 곳이 남았을까?'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에서』는 제목 그대로 '인생의 가장 낮은 층'을 보여줘.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곰팡이 핀 지하 숙소에 모여 살지. 서로 싸우다가도, 밤이 되면 누군가 건네는 달콤한 말에 기대 잠이 들어. 근데 그 달콤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 순간엔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던 것 같아. 살아남는 게 먼저니까...

 

그래서 오늘은 '사건'을 찍지 않을 거야.

빛이 거의 없는 이 지하의 공기,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위로처럼 들리는 거짓말의 그... '질감'을 찍어보면 어떨까 싶어.

 

[시놉시스 | 한 지붕 아래, 필터와 생살의 충돌]

곰팡이 핀 지하 숙소에 밀려난 사람들은 하루를 버티기 위해 서로에게 말을 걸어. 어떤 말은 차갑게 현실을 들이밀고, 어떤 말은 따뜻하게 덮어주기도 하지. 여기서 말은 ‘정답’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온도에 가까워. 오늘 장면은 그 온도가 만들어지는 순간, 촛불 같은 말이 어둠 속에서 잠깐 사람을 살게 하는 시간이야.

 

[오늘의 포인트]
- 로우 앵글로 ‘바닥의 시선’ 만들기
- 촛불 명암(키아로스쿠로 기법)으로 ‘거짓의 온기’ 보여주기
- 숨소리/기침/삐걱임으로 동굴의 사운드 쌓기

어둠 속 거친 나무 테이블 위에 꺼져가는 촛불과 빈 보드카 병, 빵 부스러기가 놓인 빈티지 무드의 클로즈업 사진.


2. Scene Reading: 진실은 차갑고, 거짓은 따뜻하다

이 합숙소에는 두 가지 종류의 '철학'이 부딪혀.

하나는 순례자 루카가 주는 달콤한 이야기들. 그의 말은 정확한 정보라기보다 진통제에 가깝지.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사틴차가운 태도야. 그는 위로를 비웃고 진실을 들이밀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차가운 진실보다 따뜻한 거짓을 더 원해. 이곳에서의 진실은 자유가 아니라 즉시 얼어붙는 현실이거든. 희망이 꺼진 사람은 쉽게 무너진다. 그 딜레마가 이 작품의 가장 씁쓸한 핵심이 되는 것 같아.


3. Director’s Cut: 촛불 하나에 의지한 군상

내가 이 장면을 연출한다면 말이야, 관객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곰팡이 냄새먼지 맛이 느껴지는 것처럼 만들고 싶어. 농담 아니고 진짜로. 어떻게 연출하면 될까... 한 번 고민해 봤어!

🎥 Camera Work: Low Angle & Claustrophobia

카메라는 바닥에 거의 붙어. 위를 올려다보는 로우 앵글이지. 천장은 낮고, 은 프레임을 눌러. 인물이 일어서면 머리가 프레임 상단에서 잘릴 정도로, '여긴 사람이 똑바로 서기엔 너무 좁다'는 걸 화면으로 보여주고 싶어.

💡 Lighting: Candlelight Chiaroscuro

전기 불빛은 없어야 해. 오직 기름 램프나 촛불 하나 정도가 딱 좋을 것 같아. 깊은 어둠 속에서 얼굴의 반쪽만 드러나는 키아로스쿠로루카가 희망을 말할 때 벽의 그림자가 거대하게 일렁거리면 좋겠어. 말은 따뜻한데 그림자는 불길하게 연출해 보는 거지.

🔊 Sound: The Breathing

마른기침, 침대 삐걱임, 카드 섞는 소리, 술에 취한 중얼거림 같은 생활 소리를 웅웅 거리는 바닥음처럼 깔고, 그 위로 루카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떠 있는 듯 들리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해서 '좋은 말'인데도 불안해지는 느낌을 만들고 싶어.


19세기 러시아의 비좁은 지하실 바닥 시점에서, 촛불 하나에 모여 앉은 초라한 사람들이 강한 명암과 짙은 그림자 속에 비치는 음울한 장면.


4. Editor’s Note: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루카는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은 다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러.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이곳의 하루는 다시 굴러가지.

그리고 나는 여기서 내 일상을 떠올려. 우리는 진실을 숭배하는 척하지만,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건 사실 루카의 방식일 때가 많잖아?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이번 일만 지나면 숨 좀 돌리겠지.',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이거... 다 엄밀한 의미의 사실은 아닐 수 있다는 거 다 알잖아? 하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이 말이 없으면 우리는 너무 쉽게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는 걸...

그러니까 거짓말이 아니라 ‘버팀을 위한 온기’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아. 오늘 밤엔 나 자신에게 작은 등불 하나를 건네보는 거지. '오늘은 여기까지 자~알... 버텼다! 토닥토닥'


이번 장면의 핵심 쇼트 3

  1. 바닥 시선 로우 앵글: 천장과 벽이 인물을 누르는 구도로 '서 있을 수 없는 삶' 시각화
  2. 촛불 키아로스쿠로: 명암과 거대한 그림자로 '따뜻한 말의 불길함' 동시 표현
  3. 생활 소리 베이스: 기침/삐걱임/중얼거림을 바닥음으로 깔고, 속삭임을 위에 얹기

[Scene Keyword]

Low Angle, Claustrophobia, Chiaroscuro, Candlelight, Shadows, Comforting Lie

 

 

 

작품 : Maxim Gorky, The Lower Depths (희곡)
※ 본 글은 장면 해석/비평 목적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며, 원문 인용은 최소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