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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분석3

[Scene #48] 베르나르 베르베르 『심판』 : 무한한 백색 호리존과 선택의 무게를 드러내는 소프트 블룸 1. 프롤로그: 인생의 로그파일을 검사받는 시간혹시 그거 알아? 단 1초 2초의 결과물을 위해 짧게는 몇 십분, 길게는 시간단위로도 작업하는 게 영상작업이야. 그래서 가끔 영상 편집을 끝내고 렌더링을 걸다 보면 이런 상상을 하곤 해. ‘결과물뿐만 아니라, 누군가 내 타임라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프레임 단위로 본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랐지만 엄청난 노력의 흔적들을 볼 수 있을 것이고, 혹은 어디서 컷을 숨겼는지, 실수를 덮었는지, 또 일부러 흐리게 처리했는지까지 전부 볼 수 있는 거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인생이 그 정도로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면, 죽은 뒤의 그 사람의 타임라인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심판』은 그 장면을 아주 직접적으로 펼쳐 놓는 작.. 2026. 1. 10.
[Scene #03]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부조리극의 여백을 담는 롱테이크(Long Take) 기법과 미니멀리즘 무대 미장센 1. 프롤로그: 우리의 지금은 어떤 무대인가이 희곡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ㅎㅎ 읽다 잠들었어. 내용은 없는 것 같고~ 말은 빙빙 돌고~ 대사는 계속 반복되고... '부조리극'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지적 허영심만 건드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마흔 줄에 들어서서 다시 읽어보니까, 이게 너무 익숙한 거야.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곳을 지나 출근을 하고, 같은 파티션 안에 앉아서, 어제랑 똑같은 일을 처리하다가 퇴근을 기다리는 삶. 오늘도 별일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일은 다르겠지'라고 말하는 습관? 디디와 고고가 주고받는 맥 빠지는 대화 있잖아. “올까?” “내일일까?” 같은, 결론이 없는 말들... 그게 마치~ 탕비실에서 동료랑 나누는 신세 한탄이랑 뭐가 .. 2025. 12. 19.
[Scene #01]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고립된 가장의 심리를 표현하는 핸드헬드(Handheld) 앵글과 뒷모습 연출 1. 프롤로그: 어릴 땐 몰랐고, 지금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처음 이 희곡을 읽었을 때, 윌리 로먼은 그냥 '고집 세고 시대감각 없는 사람'처럼 보였어.그때의 나는 되게 단순했지. 누군가 무너지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성격부터 판단해 버리는 쪽이었거든.'왜 저렇게까지 자존심을 세우지? 난 저러지 말아야지.'이런 생각을 되게 쉽게 했어. 마치 인생이 선택지 몇 개로만 구성된 게임인 것처럼...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20대를 지나 30대를 건너서 40대까지 되니까… 이 작품이 완전히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거 있지?예전에는 건너뛰던 지문들이 갑자기 내 발목을 잡았고, 별일 아닌 것 같은 문장 하나도, 이상하게 오래 남아 있더라고. 특히 더 이상한 건, 공감이 이동했다는 거야. 예전엔 분명 큰 아들 비프 쪽에.. 2025.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