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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극4

[Scene #39] 피터 쉐퍼 『에쿠우스』 : 원시적 본능을 깨우는 제의적 조명(Ritual Lighting)과 금속성의 질감 1. 프롤로그: 너의 신은, 지금 어디에 숨겨져 있나?언제부터인가 '영포티'라는 용어가 안 좋은 의미 또는 긁는 의미로 변질되었더라고. 나이와 상관 없이 젊음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왜 이렇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는지 한동안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있어. 우리가 ‘어른답게’ 산다는 말 속에는, 사실 ‘너무 뜨겁지 말 것’이 함께 들어 있는 것 같아.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는 표정, 심장이 먼저 달려가는 선택, 누가 봐도 좀 과하다고 할 만큼의 몰입 같은 것들. 한때는 그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뜨거움이 자꾸 ‘관리’의 대상이 되잖아. 적당히 눌러두고,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말끔한 얼굴로 정리해 버리는 식으로 말이야. 그런데 『에쿠우스』는 그 눌러둔 뜨거움이 어느 날 신처럼 솟구치면 어떤 .. 2026. 1. 6.
[Scene #37] 장 주네 『하녀들』 : 거울 속의 연극놀이, 반사(Reflection)와 왜곡된 자아의 미장센 1. 프롤로그: 너는 오늘, 어떤 얼굴로 살아남았어?가끔 거울을 보면 내 모습이 어색할 때가 있지 않아? 나는 특히 영업일을 할 때 더 그랬던 것 같아.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 주느라 하루 종일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히 맞춰주다가 집에 와서 불 꺼진 화면에 비친 얼굴을 보면, 내가 방금까지 '나'의 모습이었는지, 혹은 '가면'의 모습이었는지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나만 그런건 아니지? 결국 우리는 일상 속에서 '상황마다' 다른 역할을 갈아입고 살잖아. 문제는 한 역할을 너무 오래 끼고 있으면, 어디부터가 가면이고 어디까지가 내 진짜 피부였는지 잊어버린다는 거지. 장 주네의 『하녀들』은 그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인 것 같아. 이건 계급 이야기이기도 하고, 욕망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는 .. 2026. 1. 5.
[Scene #11] 셰익스피어 『햄릿』 : 자아 분열을 시각화하는 거울 반사(Reflection) 숏과 독백 씬의 조명 설계 1. 프롤로그: 우리는 모두 머릿속에서 리허설을 한다살면서 그런 적 있지 않아? 상사에게 한마디 꽂아 넣고 싶은데, 입 밖으로는 못 내고 머릿속에서만 연습하는... 뭐 그런?'이 타이밍이면 이길까?', '근데 저 인간, 반격하면 더 피곤해지겠지?', '내가 지금 감정적인 건가… 아니면 그동안 참아온 게 터진 건가?'어떤 경우는 행동을 먼저 하고, 나중에 후회를 하기도 하지. 오늘 살펴볼 햄릿은 반대야. 그는 행동을 하기 전에 후회를 먼저 하지. 심지어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대해, 이미 죄책감과 정당화를 동시에 품고 있는 거야. 그래서 칼이 늦게 뽑히는 게 아니라, 생각이 너무 빨리 뽑히는 사람인 거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400년 넘게 살아남은 이유는, 왕자라서가 아니지. 햄릿이 지독한 ‘검열하.. 2025. 12. 23.
[Scene #09] 아서 밀러 『시련』 : 집단 광기의 폐쇄성을 강조하는 프레임(Framing) 기법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의 긴장감 1. 프롤로그: 속삭임이 고함이 될 때까지가끔 SNS 댓글들을 보다 보면, 소름 돋는 순간들이 있지 않아? 처음엔 누군가가 '그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의혹 제기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의혹은 수천 개의 확신으로 달려들잖아. 그 확신들은 팩트를 찾기보다 대상을 찾고, 진실을 따지기보다 분노를 완성하지... 그리고 그 흐름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그렇게 한 번 시작된 의혹은 팩트로도 묻히지 않는다는 거야. 한 번 '저 사람이 악마다'가 시작되면, 그다음부터는 '악마가 아닌 증거'조차도 악마의 증거처럼 취급 돼버리니까. 아서 밀러의 『시련』은 17세기 살렘의 마녀재판을 다루지만, 나는 이 작품이 오히려 가장 현대적인 공포극이라고 느껴지더라. '마녀가 실제로 있냐 없냐'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 2025.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