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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희곡4

[Scene #44] 이강백 『결혼』 : 소유가 빠져나가는 순간들, 뺄셈의 무대와 핀 스팟의 고립 1. 프롤로그: ‘내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불안이 같이 따라온다난 나이에 맞지 않게 '내 것'이 참 없긴 한데, 잘 보면 우리는 습관처럼 '내 것'으로 말하는 것이 많은 듯 해. 예를 들면 ‘내 집’, ‘내 차’, ‘내 시간’ 등. 그 말이 주는 안정감이 있거든. 근데 한 번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그 ‘내 것’이 사실은 계약서 위에 얹혀 있는 경우가 많잖아. 대출이 끝나야 내 집 같고, 할부가 끝나야 내 차 같고, 일정이 비어야 내 시간이지. 이강백의 『결혼』은 그 불안을 아주 단순한 장치로 보여줘. ‘남자’는 결혼을 위해 필요한 걸 전부를 빌려 와. 저택, 의상, 장식, 하인까지도 말이야. '시간이 되면, 말없이 가져간다'는 규칙과 함께. 제목만 보면 마치 ‘로맨스’로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점.. 2026. 1. 8.
[Scene #40] 유치진 『토막』 : 흙무덤 같은 집, 폐쇄된 공간의 텍스처와 희망의 부재 1. 프롤로그: 빛이 잘 닿지 않는 방이 사람을 바꾼다나는 40대인데도 여전히 원룸생활을 하고 있어. 요즘은 워낙 1인 가구가 많다 보니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사실 많은 경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긴 해. 초등학교 때 배우기 론 의식주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라고 알았지만, 그중 '주'가 되는 집은 과연 기본적인 요소가 맞는건가 싶을 정도로 많은 고민을 하게 하지. 나만 그럴까? 월세, 전세, 대출, 이사... ‘사는 환경’이 중요한 이유는 ‘사는 방식’까지 바꿔버리는 걸 너무 자주 경험해 봤기 때문 아닐까? 유치진의 『토막』은 그 문제를 더 아래로 끌고 내려가는 작품인 것 같아. 반지하보다 더 깊고, 창문보다 문틈이 먼저 떠오르는 집. 땅을 파고, 얇은 재료로 겨우 덮어 만든 토막(土幕.. 2026. 1. 6.
[Scene #14] 천승세 『만선』 :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는 수평선 구도(Composition)와 바다의 거친 질감 표현 1. 프롤로그: 우리는 무엇을 낚으러 바다로 가는가이제 연말이네. 이쯤 되면 친구들이나 동료들끼리의 송년회 모임 꼭 있지? 그리고 그렇게 모이는 자리에서 항상 나오는 주제가 있어. 바로... 주식, 코인, 부동산. 아, 로또도 있다! '이번 한 번만 잘 되면…' 그 한 방이 나의 쌓인 대출을 해결해 줄 것이고, 내 삶을 바꿔줄 것이며, 내 인생을 뒤집어줄 것이라고 믿는 거지. 흐흐. 근데 이상하지 않아? 그 ‘한 방’을 꿈꾸는 것은 좋은데, SNS에 비친 누군가의 그 한방을 이룬 삶의 결과는 늘 좋지 않은 것 같거든. 그들은 늘 중요한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놓치더라. 힘들 때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던 얼굴들, 함께 속상해하고 울어주던 친구들, 그리고 웃음의 온도 같은 것들 말이야. 큰 성취를 이루.. 2025. 12. 24.
[Scene #12] 이강백 『파수꾼』 : 보이지 않는 공포를 형상화하는 오프 스크린 사운드(Off-screen Sound)와 공간 연출 1. 프롤로그: 우리는 어떤 공포를 소비하는가요즘, 유튜브를 보든 SNS를 보든 말이야... 세상 돌아가는 거 보다 보면 그런 생각 들지 않아? 어디선가는 늘~ “위기다”를 만들고, 누군가는 그 위기를 “관리한다”는 얼굴로 서 있잖아. 그게 뉴스든, 회사 회의든, 커뮤니티든… 늘 어딘가엔 가상의 적이 존재하더라고... 아마 그래야 사람들이 뭉치고, 그래야 불안이 돈이 되고, 그래야 누군가의 말이 법이 되기 때문인 걸까? 이강백의 희곡 『파수꾼』은 바로 그 만들어진 공포의 작동 방식을 다루는 이야기야. 황야의 망루 위 파수꾼들은 매일 밤 북을 두드려 “무언가가 온다”를 외치거든. 마을은 떨고, 질서는 강화되고, 파수꾼의 존재는...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지. 근데 어느 날, 소년 파수꾼이 자기 눈으로 확인.. 2025.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