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추천12 [Scene #46] 사무엘 베케트 『행복한 날들』 : 차오르는 흙더미의 구속과 가혹한 하이 키 조명의 역설 1. 프롤로그: 너는 지금, 어디까지 잠겨 있는 기분이야?지금의 나는 직장생활을 해. 그래서 시키는 것만 잘하다가 퇴근하면 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 프리랜서로 영상편집을 할 땐 모든 계획과 할 것을 내 주관으로 해야만 했거든. 그렇게 방 안에서 일을 하거나 혹은 멍하니 있다 보면, 그런 느낌 들 때가 있어. 하루가 끝나갈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느낌? 할 일은 늘어나고, 책임은 쌓이고, 난 그대로인데 마음은 답답해지는 거지. 하지만 그럴 때도 이렇게 이겨 냈어. ‘괜찮아.’ ‘별일 없어.’ 표정도 적당히 맞추고, 루틴도 끝까지 굴려보려고 했거든. 사무엘 베케트의 『행복한 날들(Happy Days)』은 그 상태를 무대 위에 아주 단순한 그림으로 올려놓은 .. 2026. 1. 9. [Scene #29] 손톤 와일더 『우리 읍내』 : 일상의 영원성을 시각화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과 색온도(Color Temperature) 대비 1. 프롤로그: 새해, 다시 시작될 보통의 날들을 위하여우리 모두... 또 한 살 먹었어. 슬프다. ㅎㅎ 오늘처럼 새 해의 달력이 바뀌는 순간이 오면, 마음속으로부터 뭔가 거창한 변화를 예약해 두기 마련이잖아? ‘올해는 진짜 다르게 살 거야’ 같은 다짐들... 근데 솔직히 말하면 1월 1일부터 나를 기다리는 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환경은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결국 어제와 똑같은 출근길과 똑같은 일상, 똑같은 만남들 뿐이지. 그래서 새해의 설렘은 금방 반복의 체감으로 바뀌는 경험을 얼마나 자주 해왔어.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는 그 반복을 ‘지루함’으로 몰아가지 않고, 아주 조용히 뒤집어 보여주는 것 같아. 우리가 지겹다고 부르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기적 같은 촘촘함으로 삶을 지탱하는.. 2026. 1. 1. [Scene #21] 데이비드 마멧 『글렌게리 글렌 로스』 : 자본주의적 욕망의 네온 누아르(Neon Noir) 미장센과 망원 렌즈 해석 1. 프롤로그: 숫자가 사람을 대신 말하는 날들연말뿐만 아니라, 매월 말, 혹은 평가 시즌만 되면 회사의 공기는 평소와 다르잖아? 특히 영업직군이라면 말이야. 뭔가... 무거워. 대화도 평소보다 조심스럽고, 눈치게임이 시작되는 느낌? 그때부터는 노력이나 과정이 아니라 숫자로 내가 평가 받게 되니까. ‘열심히 했다’는 문장은 뭐... 이미 증발해 있고,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지. ‘그래서 결과가 뭐야?’ 『글렌게리 글렌 로스』는 그 질문이 일상이 되어버린 공간을 보여줘. 여기서 판매는 설득이 아니라 생존이고, 동료는 팀이 아니라 경쟁자고, 침묵은 곧 패배처럼 취급돼. 보상은 번쩍이고, 낙오의 처분은 차갑지. 그래서 이 세계는 ‘회사’보다 ‘경기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 성과가 나쁘면 의자도, 말할 권리.. 2025. 12. 28. [Scene #13]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 몽환적 분위기 연출을 위한 렌즈 필터 활용과 판타지적 색보정(Color Grading) 1. 프롤로그: 그땐 왜 그렇게 미쳐있었을까가끔 학창 시절의 연애를 떠올리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을 때가 있지 않아? 하이틴 드라마의 주인공 그 자체였잖아! 하~ 그때 생각 하면 진짜... 흐흐. 그 사람 아니면 죽을 것 같고, 새벽까지 전화기 붙들고 울고불고, 말도 안 되는 질투에 눈이 뒤집히고 하고 말이야… 지금에 와서 그때를 돌아보면 이불 킥하고 싶을 정도야. 나만 그런 건 아니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은 그런 상태를 코미디로 만들어버린 작품같아. 이 작품 속 연인들은 하룻밤 사이에 마음이 ‘갈아엎어져’. 어제까지 죽자 살자 매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남처럼 느껴지고,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에게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하거든. 나는 여기서 ‘사랑의 묘약’이 단순한 마법 장치가 아니라, 사랑이.. 2025. 12. 24. [Scene #11] 셰익스피어 『햄릿』 : 자아 분열을 시각화하는 거울 반사(Reflection) 숏과 독백 씬의 조명 설계 1. 프롤로그: 우리는 모두 머릿속에서 리허설을 한다살면서 그런 적 있지 않아? 상사에게 한마디 꽂아 넣고 싶은데, 입 밖으로는 못 내고 머릿속에서만 연습하는... 뭐 그런?'이 타이밍이면 이길까?', '근데 저 인간, 반격하면 더 피곤해지겠지?', '내가 지금 감정적인 건가… 아니면 그동안 참아온 게 터진 건가?'어떤 경우는 행동을 먼저 하고, 나중에 후회를 하기도 하지. 오늘 살펴볼 햄릿은 반대야. 그는 행동을 하기 전에 후회를 먼저 하지. 심지어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대해, 이미 죄책감과 정당화를 동시에 품고 있는 거야. 그래서 칼이 늦게 뽑히는 게 아니라, 생각이 너무 빨리 뽑히는 사람인 거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400년 넘게 살아남은 이유는, 왕자라서가 아니지. 햄릿이 지독한 ‘검열하.. 2025. 12. 23. [Scene #08] 안톤 체홉 『세 자매』 :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그리는 소실점(Vanishing Point) 구도와 정지 화면 연출 1. 프롤로그: 우리는 왜 ‘언젠가’를 사는가나는 요즘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면서 오늘을 견디는 날이 많아지는 것 같아. “이번 프로젝트만 다 끝나면”, “이번 대출만 다 정리되면”, “자리만 좀 잡히면”… 뭐,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마치, 지금의 삶은 진짜 삶이 아니라 리허설이거나 대기실인 것처럼 느낄 때가 있잖아. 진짜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그곳’에 도착해야만 시작될 것처럼 말이야. 근데 이상하지? 그 ‘언젠가’가 가까워지면, 우리는 또 다른 ‘언젠가’를 만들거나 혹은 만들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 오늘은 자꾸 밀려나는 것 같아. 오늘은 계속 임시가 돼. 체홉의 『세 자매』는 바로 그 '유예된 삶'에 대한 보고서인 듯 해. 올가, 마샤, 이리나. 교양 있고 섬세한 세 자매는 시골.. 2025. 12. 21.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