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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리뷰3

[Scene #38]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 : 폭풍우 속의 '벌거벗은 인간', 그 제로 포인트(Zero Point)의 미장센 1. 프롤로그: 명함이 사라진 뒤에도, 너는 너로 남을 수 있을까2026년 새해에는 무엇을 쌓고 있어? 쌓지 못한 것들? 혹은 쌓여 있으나 더 쌓아야 할 것들...? 예를 들면 직함이나 경력, 통장 잔고, 집의 크기, 팔로워 숫자 등. 아, 내가 이 말을 꺼내는 건 그게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야. 그 덕분에 버티는 날도 많으니까. 다만 가끔은 말이야, 그 모든 게 ‘나’의 중심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오늘 살펴볼 작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해서. 만약 어떤 밤에, 그 중심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 있어? 내 이름 앞에 붙은 직함이나 호칭들이 사라지고, 내가 내세우던 배경이 한 장씩 떨어져 나가고, 결국 남는 게 ‘살아 있는 몸’ 하나뿐이라면. 그때도 우리는 스스.. 2026. 1. 5.
[Scene #37] 장 주네 『하녀들』 : 거울 속의 연극놀이, 반사(Reflection)와 왜곡된 자아의 미장센 1. 프롤로그: 너는 오늘, 어떤 얼굴로 살아남았어?가끔 거울을 보면 내 모습이 어색할 때가 있지 않아? 나는 특히 영업일을 할 때 더 그랬던 것 같아.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 주느라 하루 종일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히 맞춰주다가 집에 와서 불 꺼진 화면에 비친 얼굴을 보면, 내가 방금까지 '나'의 모습이었는지, 혹은 '가면'의 모습이었는지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나만 그런건 아니지? 결국 우리는 일상 속에서 '상황마다' 다른 역할을 갈아입고 살잖아. 문제는 한 역할을 너무 오래 끼고 있으면, 어디부터가 가면이고 어디까지가 내 진짜 피부였는지 잊어버린다는 거지. 장 주네의 『하녀들』은 그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인 것 같아. 이건 계급 이야기이기도 하고, 욕망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는 .. 2026. 1. 5.
[Scene #19] 사무엘 베케트 『엔드게임』 : 부조리극의 회색조(Grey Tone) 톤앤매너와 정적(Static) 앵글의 효과 1. 프롤로그: ‘아직도 안 끝났어?’살다 보면 가끔 그런 날 있지 않아? 가슴이 턱 막히는 순간 말이야. ‘언제쯤이면 나도 좀 숨 좀 쉴 수 있을까?’ ‘난 도대체 언제까지 이 상태로 굴러가야하는거지?’ 멋진 삶을 떠올리다가도, 결국 다음 날 알람에 눈을 뜨면 어제와 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돼 버리잖아.뭐... 박차고 나갈 용기만 있으면 될 것 같다가도, 막상 발목을 잡는 건 나 스스로의 책임이고 현실이 이어지지. 지금 당장 살아야 하는 오늘이니까. 그래서 자꾸 관성처럼, 그냥 굴러가게 되는 것 같아.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게임』은 그 감각을 아주 잔인하게 고정시켜. 장님에 앉은뱅이인 햄, 떠난다고 말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하인 클로브. 둘은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결국 같은 방 안에서 끝나지 않는 막판을.. 2025.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