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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분석5

[Scene #39] 피터 쉐퍼 『에쿠우스』 : 원시적 본능을 깨우는 제의적 조명(Ritual Lighting)과 금속성의 질감 1. 프롤로그: 너의 신은, 지금 어디에 숨겨져 있나?언제부터인가 '영포티'라는 용어가 안 좋은 의미 또는 긁는 의미로 변질되었더라고. 나이와 상관 없이 젊음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왜 이렇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는지 한동안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있어. 우리가 ‘어른답게’ 산다는 말 속에는, 사실 ‘너무 뜨겁지 말 것’이 함께 들어 있는 것 같아.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는 표정, 심장이 먼저 달려가는 선택, 누가 봐도 좀 과하다고 할 만큼의 몰입 같은 것들. 한때는 그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뜨거움이 자꾸 ‘관리’의 대상이 되잖아. 적당히 눌러두고,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말끔한 얼굴로 정리해 버리는 식으로 말이야. 그런데 『에쿠우스』는 그 눌러둔 뜨거움이 어느 날 신처럼 솟구치면 어떤 .. 2026. 1. 6.
[Scene #37] 장 주네 『하녀들』 : 거울 속의 연극놀이, 반사(Reflection)와 왜곡된 자아의 미장센 1. 프롤로그: 너는 오늘, 어떤 얼굴로 살아남았어?가끔 거울을 보면 내 모습이 어색할 때가 있지 않아? 나는 특히 영업일을 할 때 더 그랬던 것 같아.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 주느라 하루 종일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히 맞춰주다가 집에 와서 불 꺼진 화면에 비친 얼굴을 보면, 내가 방금까지 '나'의 모습이었는지, 혹은 '가면'의 모습이었는지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나만 그런건 아니지? 결국 우리는 일상 속에서 '상황마다' 다른 역할을 갈아입고 살잖아. 문제는 한 역할을 너무 오래 끼고 있으면, 어디부터가 가면이고 어디까지가 내 진짜 피부였는지 잊어버린다는 거지. 장 주네의 『하녀들』은 그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인 것 같아. 이건 계급 이야기이기도 하고, 욕망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는 .. 2026. 1. 5.
[Scene #36] 닐 사이먼 『굿 닥터』 : 빈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Spotlight)가 만드는 고독과 진심의 질감 1. 프롤로그: 우리는 늘 누군가의 ‘고개 끄덕임’을 기다리고 산다돌아보면 나도 20대 땐 참 저돌적이고 공격적이었던 것 같아. 무조건 될 거라는 긍정회로는 어디서부터 왔었는지, 그 믿음만 가지고 여기저기 오디션도 참 많이 보러 다녔고 말이야. 노래도 안되면서 뮤지컬 오디션을 보기도 하고, 제대로 외운 대본 하나 없이 연기오디션도 보고 그랬거든. 그 모든 게 내 춤 하나로 커버 될 거라는 자신감? 당연히 대부분 탈락이었지만 그 와중에 춤이 중심인 작품들이 있어서 운 좋게 무대에도 오르고 했었지. 근데, 그렇게 자신감 넘치고 저돌적이었으면서 말이야. 이상하게 무대에 서기 전엔 꼭 숨이 얕아져. 연습도 철저히 하고 무대를 씹어먹을 듯이 준비했는데, 몸이 굳어버린 것 같고, 괜히 화장실 한 번 더 가야 할 것.. 2026. 1. 4.
[Scene #35]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셀로』 : 질투를 시각화하는 필름 누아르(Film Noir) 조명과 블라인드 그림자 1. 프롤로그: 한 번 떠오른 의심은, 눈보다 먼저 귀에 붙는다지난 한 해 내 마음이 망가졌던 경험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 가만~히 돌아보면, 사람 마음을 망가뜨리는 건 꼭 거대한 사건만은 아니더라고. 오히려 ‘별말 아닌 척’ 던진 한 문장, 그게 오래 남지. 내가 듣고 있는줄 모르고 누군가가 ‘그 사람 요즘 좀 별로야’ 라며 뱉은 말을 듣게 된다면 참 힘들어. 영화 『인셉션』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기생충이 '생각'이라고 했잖아. 맞는 것 같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계속 생각하게 되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거지. 그 사람의 웃음은 비웃음 같고, 친절도 가식 같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그 심리의 함정을 정교하게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아. 장군 오셀로는 전쟁터에선 흔.. 2026. 1. 4.
[Scene #34] 고선웅 『리어외전』 : 비극을 희극으로 비트는 광각 렌즈(Wide Angle)의 왜곡과 속도감 1. 프롤로그: 웃음이 먼저 나오면, 이미 무너진 거다가끔 그런 날 있지 않아? 진짜로 속상한 일이 닥친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웃음이 먼저 나오는 날 말이야. 설마 웃겨서 웃었을까... 사실,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슬퍼할 타이밍조차 놓쳐버리는 순간인 거지. 그 웃음은 낙천도 위로도 아니고, 그냥 ‘정신이 버티는 방식’에 가깝겠지. 고선웅의 『리어외전』은 바로 그 웃음을 무대 위에 올려놓는 작품인 듯 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고통을 천천히 씹어 삼키는 비극이라면, 『리어외전』은 그 고통을 한 번에 삼켰다가 기침처럼 터뜨려 버려. 인물들은 품위를 지키며 무너지는 대신,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더 빠르게 무너져. 그래서 우리는 웃는데, 웃다가 갑자기 목이 잠기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오늘.. 2026.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