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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극5

[Scene #46] 사무엘 베케트 『행복한 날들』 : 차오르는 흙더미의 구속과 가혹한 하이 키 조명의 역설 1. 프롤로그: 너는 지금, 어디까지 잠겨 있는 기분이야?지금의 나는 직장생활을 해. 그래서 시키는 것만 잘하다가 퇴근하면 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 프리랜서로 영상편집을 할 땐 모든 계획과 할 것을 내 주관으로 해야만 했거든. 그렇게 방 안에서 일을 하거나 혹은 멍하니 있다 보면, 그런 느낌 들 때가 있어. 하루가 끝나갈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느낌? 할 일은 늘어나고, 책임은 쌓이고, 난 그대로인데 마음은 답답해지는 거지. 하지만 그럴 때도 이렇게 이겨 냈어. ‘괜찮아.’ ‘별일 없어.’ 표정도 적당히 맞추고, 루틴도 끝까지 굴려보려고 했거든. 사무엘 베케트의 『행복한 날들(Happy Days)』은 그 상태를 무대 위에 아주 단순한 그림으로 올려놓은 .. 2026. 1. 9.
[Scene #32] 해롤드 핀터 『생일파티』 : 핀터레스크(Pinteresque)의 공포를 시각화하는 조명 단절(Blackout)과 프레임의 고립 1. 프롤로그: 가장 익숙한 방이, 가장 낯선 방이 되는 순간2026년의 첫 출근 후 퇴근. 오늘 하루도 다들 고생 많았어. 난 첫 출근 후 황급히(?) 집으로 피난 왔어! 난 집이 나만의 은신처거든. 사람은 다 자기만의 은신처가 있잖아. 누가 뭐라 해도, 오늘 하루가 아무리 어긋나도, 문만 닫으면 잠깐은 숨이 돌아오는 곳. 내 방이든, 자주 가는 카페의 구석 자리든, 익숙한 냄새와 익숙한 소리로 나를 달래주는 작은 장소 말이야. 하지만 핀터는 그 은신처를 ‘가장 약한 지점’으로 바꿔버려. 바깥의 위협이 아니라, 안쪽에서부터 안전감이 무너지는 방식이지. 『생일파티』가 무서운 건 괴물이 나오고 막 그래서가 아니야.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라서 더 무서운 거지. 낯선 두 사람이 뭔가 막~ 큰 소리를 치지 않는데.. 2026. 1. 2.
[Scene #23] 외젠 이오네스코 『대머리 여가수』 : 언어의 파괴를 시각화하는 대칭 구도(Symmetry)와 무감정의 조명 연출 1. 프롤로그: 대화는 오가는데, 사람은 남지 않는다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말이야, 말을 안 하고 살 순 없잖아? 예전에 영상편집을 프리랜서로 할 땐, 스터디카페에 앉아서 혼자 작업하느라 말을 할 일이 없었지만, 직장은 다르지.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항상 소통을 해야 업무가 돌아가는 거잖아. ‘네, 확인했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자료 공유드립니다’.... 그러다 문득, 오늘 내가 한 말 중에 진짜 내 마음이 묻어난 문장이 몇 개나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어? 매 순간 상대를 향해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를 피해 매뉴얼을 낭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는 바로 그런 의심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서, 웃기는 척 하면서도 속을 서늘.. 2025. 12. 29.
[Scene #19] 사무엘 베케트 『엔드게임』 : 부조리극의 회색조(Grey Tone) 톤앤매너와 정적(Static) 앵글의 효과 1. 프롤로그: ‘아직도 안 끝났어?’살다 보면 가끔 그런 날 있지 않아? 가슴이 턱 막히는 순간 말이야. ‘언제쯤이면 나도 좀 숨 좀 쉴 수 있을까?’ ‘난 도대체 언제까지 이 상태로 굴러가야하는거지?’ 멋진 삶을 떠올리다가도, 결국 다음 날 알람에 눈을 뜨면 어제와 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돼 버리잖아.뭐... 박차고 나갈 용기만 있으면 될 것 같다가도, 막상 발목을 잡는 건 나 스스로의 책임이고 현실이 이어지지. 지금 당장 살아야 하는 오늘이니까. 그래서 자꾸 관성처럼, 그냥 굴러가게 되는 것 같아.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게임』은 그 감각을 아주 잔인하게 고정시켜. 장님에 앉은뱅이인 햄, 떠난다고 말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하인 클로브. 둘은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결국 같은 방 안에서 끝나지 않는 막판을.. 2025. 12. 27.
[Scene #03]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부조리극의 여백을 담는 롱테이크(Long Take) 기법과 미니멀리즘 무대 미장센 1. 프롤로그: 우리의 지금은 어떤 무대인가이 희곡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ㅎㅎ 읽다 잠들었어. 내용은 없는 것 같고~ 말은 빙빙 돌고~ 대사는 계속 반복되고... '부조리극'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지적 허영심만 건드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마흔 줄에 들어서서 다시 읽어보니까, 이게 너무 익숙한 거야.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곳을 지나 출근을 하고, 같은 파티션 안에 앉아서, 어제랑 똑같은 일을 처리하다가 퇴근을 기다리는 삶. 오늘도 별일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일은 다르겠지'라고 말하는 습관? 디디와 고고가 주고받는 맥 빠지는 대화 있잖아. “올까?” “내일일까?” 같은, 결론이 없는 말들... 그게 마치~ 탕비실에서 동료랑 나누는 신세 한탄이랑 뭐가 .. 2025.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