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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0] 차범석 『산불』 : 대나무 숲의 명암 대비(Contrast)와 인간의 본능을 상징하는 붉은 조명 미장센 1. 프롤로그: 이념은 옷, 본능은 피부요즘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 뭐냐면,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주의(-ism)’와 싸우잖아? 정치색, 사회적 신념, 갈라 치기 같은 것들 말이야. 겉으로는 거창한 명분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막상 극한 상황에 닥치면 사실, 인간은 되게 단순해지지. 배고프면 밥을 찾고, 추우면 불을 찾고, 외로우면 체온을 찾잖아? 그러니까 명분은 겉옷이고, 결국 우리를 밀어 움직이는 건 피부에 달라붙은 본능이더라는 거지. 차범석의 『산불』은 한국전쟁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배경을 깔고 있지만, 잘 보면 단순한 전쟁극은 아니야. 오히려 재난 스릴러처럼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지독하게 멜로 같아. 남자들은 죽거나 끌려가고, 여자들만 남은 산골 마을. 그곳에 숨어든 한 명의 .. 2025. 12. 22.
[Scene #09] 아서 밀러 『시련』 : 집단 광기의 폐쇄성을 강조하는 프레임(Framing) 기법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의 긴장감 1. 프롤로그: 속삭임이 고함이 될 때까지가끔 SNS 댓글들을 보다 보면, 소름 돋는 순간들이 있지 않아? 처음엔 누군가가 '그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의혹 제기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의혹은 수천 개의 확신으로 달려들잖아. 그 확신들은 팩트를 찾기보다 대상을 찾고, 진실을 따지기보다 분노를 완성하지... 그리고 그 흐름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그렇게 한 번 시작된 의혹은 팩트로도 묻히지 않는다는 거야. 한 번 '저 사람이 악마다'가 시작되면, 그다음부터는 '악마가 아닌 증거'조차도 악마의 증거처럼 취급 돼버리니까. 아서 밀러의 『시련』은 17세기 살렘의 마녀재판을 다루지만, 나는 이 작품이 오히려 가장 현대적인 공포극이라고 느껴지더라. '마녀가 실제로 있냐 없냐'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 2025. 12. 22.
[Scene #08] 안톤 체홉 『세 자매』 :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그리는 소실점(Vanishing Point) 구도와 정지 화면 연출 1. 프롤로그: 우리는 왜 ‘언젠가’를 사는가나는 요즘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면서 오늘을 견디는 날이 많아지는 것 같아. “이번 프로젝트만 다 끝나면”, “이번 대출만 다 정리되면”, “자리만 좀 잡히면”… 뭐,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마치, 지금의 삶은 진짜 삶이 아니라 리허설이거나 대기실인 것처럼 느낄 때가 있잖아. 진짜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그곳’에 도착해야만 시작될 것처럼 말이야. 근데 이상하지? 그 ‘언젠가’가 가까워지면, 우리는 또 다른 ‘언젠가’를 만들거나 혹은 만들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 오늘은 자꾸 밀려나는 것 같아. 오늘은 계속 임시가 돼. 체홉의 『세 자매』는 바로 그 '유예된 삶'에 대한 보고서인 듯 해. 올가, 마샤, 이리나. 교양 있고 섬세한 세 자매는 시골.. 2025. 12. 21.
[Scene #07] 테네시 윌리엄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환상과 현실의 충돌을 표현하는 조명 확산(Diffusion) 필터와 색채 대비 1. 프롤로그: 우리는 모두 ‘필터’가 필요해나는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을 때 항상 기본 카메라로 찍거든? 근데 주변에서 사진 찍을 때 보면, 진짜 나처럼 기본 카메라만 쓰는 사람 거의 없는 것 같더라고. 필터를 씌우고, 밝기랑 톤을 올리고, 잡티도 지우고... 화장도 필터로 해주던데? 와... 엄청난 기술들 ㅎㅎ. 이런 기술은 왜 이렇게까지 발전해 온 걸까 생각해 보면, 그만큼 소비자들이 원했기 때문이겠지? 왜 그렇게 원했던 걸까? 결국, 거울 속의 적나라한 ‘나’보다, 조금 가공된 ‘나’가 더 견디기 쉬워서인 걸까?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는 딱 그런 상징성을 가진 사람인 것 같아. 밝은 대낮을 싫어하고, 형광등 같은 냉정한 빛을 견디지 못해. 대신 반드시 종이 전등갓(P.. 2025. 12. 21.
[Scene #06] 막심 고리키 『밑바닥에서』: 지하 공간의 거친 질감(Texture)을 살리는 로우 키(Low Key) 조명 활용법 1. 프롤로그: 우리는 어디쯤 내려와 있는가내가 한참 직장이 구해지지 않아서 힘든 시절을 보내던 날에는, 일부러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모니터링하곤 했거든? 날이 갈수록 피곤에 찌든 눈, 푸석한 피부, 영혼 없이 흔들리는 몸. 하...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올라오기도 하더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닥일까, 아니면 아직 더 내려갈 곳이 남았을까?'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에서』는 제목 그대로 '인생의 가장 낮은 층'을 보여줘.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곰팡이 핀 지하 숙소에 모여 살지. 서로 싸우다가도, 밤이 되면 누군가 건네는 달콤한 말에 기대 잠이 들어. 근데 그 달콤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 순간엔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던 것 같아. 살아남는 게 먼저니까... 그래서 오늘은 .. 2025. 12. 20.
[Scene #05] 헨릭 입센 『인형의 집』: 완벽한 거실의 균열을 포착하는 대칭 구도(Symmetry)와 차가운 색온도 분석 1. 프롤로그: 완벽하게 세팅된 무대 위에서가끔 SNS를 보다 보면 기분이 묘해질 때가 있지 않아? 완벽할 정도로 잘 정리된 거실, 그림처럼 차려진 예쁜 식탁, 언제나 늘 웃고 있는 커플사진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사진들 말이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저 사진 밖의 진짜 공기는 어떤 온도일까?' 셔터가 눌리기 직전까지 누군가는 지쳤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참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저마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무대를 꾸미고, 그 무대가 오래 갈수록 무대가 현실을 이겨먹기 시작하는 것 같아.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보여야 하는 삶’이 더 우선이 되는 순간이 오거든.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은 그런 의미에서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완벽한 거실'이 아닐까.. 2025. 12. 20.
[Scene #04] 안톤 체홉 『갈매기』: 호수의 정적을 극대화하는 딥 포커스(Deep Focus)와 앰비언스(Ambience) 사운드 디자인 1. 프롤로그: '밥 먹고 차 마시는 동안, 인생은 무너진다'체홉 작품을 읽다 보면 가끔, 말이 아니라 온도가 남을 때가 있는 것 같아. 혹시 이해 돼? 사람들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평범한 시간에도, 누군가는 행복을 만들고 누군가는 조용히 무너진다는 그 감각... 말이야. 어릴 땐 그런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 비극이면 응당 누군가 울부짖고 사건이 폭발해야 하는 줄 알았거든.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알겠더라. 진짜 비극은 소리 없이 온다는 것을 말이야. 우리가 무표정하게 스마트폰을 스크롤하고, 농담을 주고받고, 멍하니 창밖을 볼 때… 내면의 어떤 세계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을 수도 있더라는 거지. 『갈매기』가 무서운 건 그래서야. 인물들은 호숫가에 모여서 끊임없이 엇갈려. “나 좀 봐줘” “날 사랑해줘”.. 2025. 12. 19.
[Scene #03]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부조리극의 여백을 담는 롱테이크(Long Take) 기법과 미니멀리즘 무대 미장센 1. 프롤로그: 우리의 지금은 어떤 무대인가이 희곡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ㅎㅎ 읽다 잠들었어. 내용은 없는 것 같고~ 말은 빙빙 돌고~ 대사는 계속 반복되고... '부조리극'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지적 허영심만 건드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마흔 줄에 들어서서 다시 읽어보니까, 이게 너무 익숙한 거야.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곳을 지나 출근을 하고, 같은 파티션 안에 앉아서, 어제랑 똑같은 일을 처리하다가 퇴근을 기다리는 삶. 오늘도 별일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일은 다르겠지'라고 말하는 습관? 디디와 고고가 주고받는 맥 빠지는 대화 있잖아. “올까?” “내일일까?” 같은, 결론이 없는 말들... 그게 마치~ 탕비실에서 동료랑 나누는 신세 한탄이랑 뭐가 .. 2025. 12. 19.
[Scene #02] 테네시 윌리엄스 『유리동물원』: 기억의 왜곡을 시각화하는 소프트 포커스(Soft Focus)와 달빛 조명 분석 1. 프롤로그: 우리는 모두 각자의 ‘창고’에서 일한다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나는, 톰을 보는 게 편하지만은 않았어. 다리가 불편한 누나 로라, 신경질적이고 숨 막히게 통제하는 엄마 아만다를 두고, 자기 꿈을 찾겠다고 훌쩍 떠나버리는 한 편으로는 무책임한 사람. 그게 내가 처음 붙여준 톰의 이름표였을지도 모르지.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야, 이상하게도 '톰이 어떤 선택을 했나'보다 '톰이 어디에서 하루를 썼나'가 눈에 들어오더라. 그가 일하던 곳이 ‘신발 창고’였다는 사실 말이야. 상자 옮기고, 먼지 뒤집어쓰고, 상사의 눈치 보고,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하루를 버티는 곳. 거기서 톰은 몰래 시를 쓰고, 퇴근하면 “영화 보러 간다”며 둘러대고 밤거리를 쏘다니지. 여기서 갑자기 내 책상 위 업무 자료가 .. 2025.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