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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46] 사무엘 베케트 『행복한 날들』 : 차오르는 흙더미의 구속과 가혹한 하이 키 조명의 역설 1. 프롤로그: 너는 지금, 어디까지 잠겨 있는 기분이야?지금의 나는 직장생활을 해. 그래서 시키는 것만 잘하다가 퇴근하면 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 프리랜서로 영상편집을 할 땐 모든 계획과 할 것을 내 주관으로 해야만 했거든. 그렇게 방 안에서 일을 하거나 혹은 멍하니 있다 보면, 그런 느낌 들 때가 있어. 하루가 끝나갈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느낌? 할 일은 늘어나고, 책임은 쌓이고, 난 그대로인데 마음은 답답해지는 거지. 하지만 그럴 때도 이렇게 이겨 냈어. ‘괜찮아.’ ‘별일 없어.’ 표정도 적당히 맞추고, 루틴도 끝까지 굴려보려고 했거든. 사무엘 베케트의 『행복한 날들(Happy Days)』은 그 상태를 무대 위에 아주 단순한 그림으로 올려놓은 .. 2026. 1. 9.
[Scene #45]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 칠흑 속의 거래, 단일 광원과 거리감이 만드는 느와르 1. 프롤로그: 새벽의 도시에서, 사람은 왜 더 솔직해질까낮에는 그렇게 활기차던 거리의 '조용한 새벽'을 보며 이질감을 느껴본 적 있어? 난 특히 밤새 영상편집을 하다가 바람 쐬러 잠시 밖을 나가면 그런 경험을 자주 했거든. 움직이던 모든 것들이 멈춰 있고, 간혹 길고양이의 경계 정도만 눈에 들어오지. 이런 새벽이 주는 이질감은 거리의 환경 뿐만은 아닌 것 같아. 낮에는 ‘괜찮은 척’으로 버티던 마음이, 유독 이 시간엔 쉽게 들키는 것 같거든. 어두움은 가려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주 작은 욕망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놓기도 하니까.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그 새벽의 감각을 무대 위에 그대로 올려놓은 작품이야. 등장인물은 둘뿐이야. 딜러와 손님. 한 사람은 ‘원하는 게 있잖아’라고.. 2026. 1. 9.
[Scene #44] 이강백 『결혼』 : 소유가 빠져나가는 순간들, 뺄셈의 무대와 핀 스팟의 고립 1. 프롤로그: ‘내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불안이 같이 따라온다난 나이에 맞지 않게 '내 것'이 참 없긴 한데, 잘 보면 우리는 습관처럼 '내 것'으로 말하는 것이 많은 듯 해. 예를 들면 ‘내 집’, ‘내 차’, ‘내 시간’ 등. 그 말이 주는 안정감이 있거든. 근데 한 번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그 ‘내 것’이 사실은 계약서 위에 얹혀 있는 경우가 많잖아. 대출이 끝나야 내 집 같고, 할부가 끝나야 내 차 같고, 일정이 비어야 내 시간이지. 이강백의 『결혼』은 그 불안을 아주 단순한 장치로 보여줘. ‘남자’는 결혼을 위해 필요한 걸 전부를 빌려 와. 저택, 의상, 장식, 하인까지도 말이야. '시간이 되면, 말없이 가져간다'는 규칙과 함께. 제목만 보면 마치 ‘로맨스’로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점.. 2026. 1. 8.
[Scene #43] 헨릭 입센 『유령』 : 빗물에 젖은 유전과 태양이 만드는 과노출(Over Exposure)의 미장센 1. 프롤로그: 닮는다는 건, 예고 없이 찾아온다가끔 그럴 때가 있어. 거울을 보다가 잠깐 멈추게 되는 거지. 뭐냐면 내가 싫어했던 누군가의 모습이나 표정이 거울 속에서 보이는 거야. 겉모습만 그럴까... ‘나는 절대 저렇게 안 살 거야’라고 마음먹었던 방식이, 무의식 중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걸 발견하면 깜짝 놀라곤 해. 헨릭 입센의 『유령』은 그 ‘닮음’이 단순한 가족 닮은꼴 수준이 아니라, 숨겨둔 삶의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야. 여기서 유령은 흰 천을 뒤집어쓴 귀신이 아니야. 집안이 오랫동안 감춰온 진실, 편의대로 만든 도덕, 말하지 못한 사건들. 그런 것들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결국 다른 방식으로 다시 나타나는 거지. 나는 이 작품을 ‘젖은 집’으로 찍고 .. 2026. 1. 8.
[Scene #42] 에드워드 알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 환상이 걷히는 새벽, 하드 라이트가 남기는 ‘잔해’의 미장센 1. 프롤로그: 파티가 끝난 뒤, 불 켜진 거실에서 남는 얼굴오늘은 퇴근 후 방에 들어오는 순간 느꼈어. 오늘 하루 참... 길었다는 걸. 밖에서는 멀쩡한 척 웃고 떠들며 사람들과 맞춰주다가, 퇴근 후 현관문 닫고 불을 켰는데 매일 보는 환경이 유독 낯설게 느껴지는 날 있잖아? 이런 날은 밝아진 조명 아래서 숨겨뒀던 피로감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보이더라고. 아까까지는 괜찮았던 표정이, 지금은 피곤하고 무표정하게 굳어 있는 거지. 에드워드 알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바로 그 순간을 밤새 늘려놓은 작품같아. 중년 부부 조지와 마사는 손님을 불러놓고도 서로를 배려하지 않지. 대화는 자꾸 칼끝으로 바뀌고, 농담은 모욕으로 착지하고, 사소한 말이 관계 전체를 흔들기도 해. 중요한 건, 싸움의 .. 2026. 1. 7.
[Scene #41] 해롤드 핀터 『배신』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관계의 균열과 침묵의 미장센 1. 프롤로그: 결말을 아는 채로, 시작을 다시 바라보는 일어리고 젊었던 시절엔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고 맺었던 게 관계였는데,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상처만 남은 관계가 참 많더라고. 그래서 그런가... 점점 필요한 만남 외에는 관계맺지 않는 습관이 생겼어. 다만, 그러고 나니 뭔가 외로움도 함께 찾아오기도 하는...? 그래서 생각해 본 게 과거에 좀 더 좋은 관계를 만들 순 없었을까 하는 후회도 있었어.어떤 관계는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해지더라.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면 기억들이 이상하게 정리가 되는 경우도 있지. 그 기억의 조각들이 뒤늦게 줄을 서면서, 마음 한쪽에 이런 질문이 남기도 하더라고. ‘내 관계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틀어져 있었을까?’ 해롤드 핀터의 『배신』은 그 질문을 아주 독특한.. 2026. 1. 7.
[Scene #40] 유치진 『토막』 : 흙무덤 같은 집, 폐쇄된 공간의 텍스처와 희망의 부재 1. 프롤로그: 빛이 잘 닿지 않는 방이 사람을 바꾼다나는 40대인데도 여전히 원룸생활을 하고 있어. 요즘은 워낙 1인 가구가 많다 보니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사실 많은 경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긴 해. 초등학교 때 배우기 론 의식주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라고 알았지만, 그중 '주'가 되는 집은 과연 기본적인 요소가 맞는건가 싶을 정도로 많은 고민을 하게 하지. 나만 그럴까? 월세, 전세, 대출, 이사... ‘사는 환경’이 중요한 이유는 ‘사는 방식’까지 바꿔버리는 걸 너무 자주 경험해 봤기 때문 아닐까? 유치진의 『토막』은 그 문제를 더 아래로 끌고 내려가는 작품인 것 같아. 반지하보다 더 깊고, 창문보다 문틈이 먼저 떠오르는 집. 땅을 파고, 얇은 재료로 겨우 덮어 만든 토막(土幕.. 2026. 1. 6.
[Scene #39] 피터 쉐퍼 『에쿠우스』 : 원시적 본능을 깨우는 제의적 조명(Ritual Lighting)과 금속성의 질감 1. 프롤로그: 너의 신은, 지금 어디에 숨겨져 있나?언제부터인가 '영포티'라는 용어가 안 좋은 의미 또는 긁는 의미로 변질되었더라고. 나이와 상관 없이 젊음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왜 이렇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는지 한동안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있어. 우리가 ‘어른답게’ 산다는 말 속에는, 사실 ‘너무 뜨겁지 말 것’이 함께 들어 있는 것 같아.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는 표정, 심장이 먼저 달려가는 선택, 누가 봐도 좀 과하다고 할 만큼의 몰입 같은 것들. 한때는 그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뜨거움이 자꾸 ‘관리’의 대상이 되잖아. 적당히 눌러두고,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말끔한 얼굴로 정리해 버리는 식으로 말이야. 그런데 『에쿠우스』는 그 눌러둔 뜨거움이 어느 날 신처럼 솟구치면 어떤 .. 2026. 1. 6.
[Scene #38]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 : 폭풍우 속의 '벌거벗은 인간', 그 제로 포인트(Zero Point)의 미장센 1. 프롤로그: 명함이 사라진 뒤에도, 너는 너로 남을 수 있을까2026년 새해에는 무엇을 쌓고 있어? 쌓지 못한 것들? 혹은 쌓여 있으나 더 쌓아야 할 것들...? 예를 들면 직함이나 경력, 통장 잔고, 집의 크기, 팔로워 숫자 등. 아, 내가 이 말을 꺼내는 건 그게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야. 그 덕분에 버티는 날도 많으니까. 다만 가끔은 말이야, 그 모든 게 ‘나’의 중심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오늘 살펴볼 작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해서. 만약 어떤 밤에, 그 중심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 있어? 내 이름 앞에 붙은 직함이나 호칭들이 사라지고, 내가 내세우던 배경이 한 장씩 떨어져 나가고, 결국 남는 게 ‘살아 있는 몸’ 하나뿐이라면. 그때도 우리는 스스.. 2026.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