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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49] 샘 셰퍼드 『트루 웨스트』 : 엔트로피의 미장센과 혼합 광원의 충돌 1. 프롤로그: 내 안의 야수는 언제 튀어나오는가영상편집을 할 땐 항상 밤샘작업의 연속이었어. 그렇게 밤을 새 가며 편집을 하다 보면, 유지하던 컨트롤이 느슨해지는 순간이 꼭 오곤 해. 아무리 집중을 해도 수정은 계속되고, 작업도 길어지고, 그러는 동안 커피는 차갑게 식어 있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몸은 점점 한계를 느끼더라. 다 엎어버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면 꾹 참고 견뎌내야 하지. 영상편집만 그러할까? 우린 보통 일상에서 꼭 밤샘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순간을 살고 있잖아.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마다 탈출하고 싶은 충동이, 참아냈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 거지. 샘 셰퍼드의 『트루 웨스트』는 그 억눌린 충동이 ‘형제’라는 형태로 눈앞에 나타난 작품인.. 2026. 1. 11.
[Scene #48] 베르나르 베르베르 『심판』 : 무한한 백색 호리존과 선택의 무게를 드러내는 소프트 블룸 1. 프롤로그: 인생의 로그파일을 검사받는 시간혹시 그거 알아? 단 1초 2초의 결과물을 위해 짧게는 몇 십분, 길게는 시간단위로도 작업하는 게 영상작업이야. 그래서 가끔 영상 편집을 끝내고 렌더링을 걸다 보면 이런 상상을 하곤 해. ‘결과물뿐만 아니라, 누군가 내 타임라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프레임 단위로 본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랐지만 엄청난 노력의 흔적들을 볼 수 있을 것이고, 혹은 어디서 컷을 숨겼는지, 실수를 덮었는지, 또 일부러 흐리게 처리했는지까지 전부 볼 수 있는 거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인생이 그 정도로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면, 죽은 뒤의 그 사람의 타임라인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심판』은 그 장면을 아주 직접적으로 펼쳐 놓는 작.. 2026. 1. 10.
[Scene #47] 야스미나 레자 『아트』 : 하얀 캔버스의 텍스처와 관계를 해부하는 플랫 라이팅 1. 프롤로그: 같은 흰색을 보고도, 왜 우리는 다르게 말할까가끔 촬영하는 분들 보다보면, 흰색 종이 앞에서 카메라를 조작하는 장면 본 적 있어? 바로 화이트밸런스를 맞추는 거거든. 이유는 간단하지만 매우 중요해. 흰색을 같은 흰색으로 보이게 하려고 하는 거지. 찍는 환경이나 조도에 따라 카메라에 담기는 색상의 밸런스가 다 다르거든. 그걸 흰색으로부터 최대한 통일시켜야 나중에 색상편집할 때 수월해지거든.그런데 진짜... 촬영 편집을 하다보면, 힘들게 수치가 맞춰도 어떤 컷은 좀 더 차갑고 어떤 컷은 좀 더 누렇게 뜨는 경우가 늘 있어. 참... 힘들게 하지. 색만 그럴까? 색은 맞는데 정서가 어긋난 상태. 사람 관계도 딱 그럴 때가 있잖아? 같은 일을 겪고, 같은 말을 들었는데, 누군가는 ‘별일 아니야’.. 2026. 1. 10.
[Scene #46] 사무엘 베케트 『행복한 날들』 : 차오르는 흙더미의 구속과 가혹한 하이 키 조명의 역설 1. 프롤로그: 너는 지금, 어디까지 잠겨 있는 기분이야?지금의 나는 직장생활을 해. 그래서 시키는 것만 잘하다가 퇴근하면 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 프리랜서로 영상편집을 할 땐 모든 계획과 할 것을 내 주관으로 해야만 했거든. 그렇게 방 안에서 일을 하거나 혹은 멍하니 있다 보면, 그런 느낌 들 때가 있어. 하루가 끝나갈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느낌? 할 일은 늘어나고, 책임은 쌓이고, 난 그대로인데 마음은 답답해지는 거지. 하지만 그럴 때도 이렇게 이겨 냈어. ‘괜찮아.’ ‘별일 없어.’ 표정도 적당히 맞추고, 루틴도 끝까지 굴려보려고 했거든. 사무엘 베케트의 『행복한 날들(Happy Days)』은 그 상태를 무대 위에 아주 단순한 그림으로 올려놓은 .. 2026. 1. 9.
[Scene #45]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 칠흑 속의 거래, 단일 광원과 거리감이 만드는 느와르 1. 프롤로그: 새벽의 도시에서, 사람은 왜 더 솔직해질까낮에는 그렇게 활기차던 거리의 '조용한 새벽'을 보며 이질감을 느껴본 적 있어? 난 특히 밤새 영상편집을 하다가 바람 쐬러 잠시 밖을 나가면 그런 경험을 자주 했거든. 움직이던 모든 것들이 멈춰 있고, 간혹 길고양이의 경계 정도만 눈에 들어오지. 이런 새벽이 주는 이질감은 거리의 환경 뿐만은 아닌 것 같아. 낮에는 ‘괜찮은 척’으로 버티던 마음이, 유독 이 시간엔 쉽게 들키는 것 같거든. 어두움은 가려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주 작은 욕망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놓기도 하니까.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그 새벽의 감각을 무대 위에 그대로 올려놓은 작품이야. 등장인물은 둘뿐이야. 딜러와 손님. 한 사람은 ‘원하는 게 있잖아’라고.. 2026. 1. 9.
[Scene #44] 이강백 『결혼』 : 소유가 빠져나가는 순간들, 뺄셈의 무대와 핀 스팟의 고립 1. 프롤로그: ‘내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불안이 같이 따라온다난 나이에 맞지 않게 '내 것'이 참 없긴 한데, 잘 보면 우리는 습관처럼 '내 것'으로 말하는 것이 많은 듯 해. 예를 들면 ‘내 집’, ‘내 차’, ‘내 시간’ 등. 그 말이 주는 안정감이 있거든. 근데 한 번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그 ‘내 것’이 사실은 계약서 위에 얹혀 있는 경우가 많잖아. 대출이 끝나야 내 집 같고, 할부가 끝나야 내 차 같고, 일정이 비어야 내 시간이지. 이강백의 『결혼』은 그 불안을 아주 단순한 장치로 보여줘. ‘남자’는 결혼을 위해 필요한 걸 전부를 빌려 와. 저택, 의상, 장식, 하인까지도 말이야. '시간이 되면, 말없이 가져간다'는 규칙과 함께. 제목만 보면 마치 ‘로맨스’로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점.. 2026. 1. 8.